[문화의 창] 딩동댕 울리는 그녀의 기타

입력 2024-11-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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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미모의 치과의사, 그녀의 기타 이야기다.

대학 신입생 시절, 막 배운 기타소리에 빠져들어 학교생활도 등한히 한 채,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기타를 치러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학기를 마친 뒤 장학금을 받았고, 이 돈으로 장학사업 대신 덜컥 고급 수제기타를 사버렸다.

다들 보급형 세고비아 기타로 분위기 잡을 때, 적당히만 튕겨도 깊은 울림이 있는 이 기타는 그녀의 분신이자 자랑거리였다. 몇 년 후, 졸업 준비로 바빠지고 기타에 대한 초기의 열정도 식으면서 기타를 누구에겐가 빌려주게 되었다. 방구석에 놓여 먼지가 쌓이는 것보다는 매일매일 연주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

십여 년이 흐른 뒤에야 기타가 그녀에게 돌아왔다. 기다란 넥이 살짝 휘어져 있어 지인을 통해 수선을 부탁했는데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수리점 사장님이 이 기타를 보더니 자기 아버님이 만든 것이라며 너무 반갑다고 합니다. 같이 일하던 아들에게도 할아버지가 만든 기타라고 보여주면서….”

수선을 마치고 돌아온 기타가 반가워 한동안 기타를 뚱땅거렸다. 그러다가 기타는 다시 방치된 채 먼지가 쌓여갔다.

그렇게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불현듯 기타의 상태를 점검해 보고 싶었다. 여기저기 검색해 찾아간 수리점, 기타를 꼼꼼히 살펴보던 사장님은 “하하, 이거 저희 할아버지 기타네요.” 처음 맡겼던 수리점에서 일하던 아들이 대를 이어 기타를 수선하고 있었다. 젊은 사장님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만든 기타를 다시 만났다고 무척 놀라워했다. 신기한 인연의 연속이었다. 전문적인 연주가 아니라면 충분히 좋은 소리를 낼 것이라며 혹시, 이 기타를 누구에겐가 팔고 싶다면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기타는 새 것 마냥 반짝거렸고 소리도 한결 맑아졌다.

최근 다시 기타를 쳐보려 했지만, 손을 써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면 불편하고, 또 오랜만에 기타 줄을 붙들고 힘을 주려니 손가락 끝이 아파서 기타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수제기타 1세대인 ○○○ 장인의 기타가 또다시 방구석에서 먼지만 덮어쓰게 생겼다.

어쩔 수 없이 기타를 또 지인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간의 사연을 잘 알고 있고 기타를 아끼며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예 입양 보낼까도 생각했지만 그녀의 청춘 시절을 함께 해왔던 기타를 아주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고.

호감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목소리가 청아해서’, ‘패션스타일이 세련돼서’ 등. 목소리나 패션이 그 사람의 본질은 아니지만, 그 이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자 그만의 기호(記號, sign)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명품에 대한 선호 역시, 명품이라는 기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려는 심리다.

기타는 7080시대의 청춘과 낭만의 기호였다. 흔히들 청춘을 아름답다고 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스스로 빛이 난다는 말이고, 빛은 내부의 영혼이 겉으로 배어나온 윤기(潤氣)다. 그녀의 청춘 역시 기타소리와 더불어 찬란했으리라. 기타도 그녀도 세월이 흘러 그때만큼의 연주가 될 수 없겠지만, 아르페지오로 은은하게 울리는 기타 이야기는 남아 있다.

“ ……그녀는 늘 푸른 그 동산을 떠나 하늘의 은하수가 되어 버렸던 거야. 딩동댕 울리는 나의 기타는 지난날의 사랑 이야기, 아름답고 철모르던 지난날의 슬픈 이야기, 딩동댕, 딩동댕 울린다.” 송창식이 노래했던 ‘나의 기타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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