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예금 열흘새 23.6억달러 증가
엔화예금 전월比 3690억엔 감소
요구불예금 사흘새 12조 늘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주요 시중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도 출렁이고 있다. 연내 원·달러 환율이 1450원 대를 터치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자 달러를 사들이는 소비자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달러예금은 전날 기준 613억3036만 달러로 지난달 말(589억6855만 달러)에서 약 열흘 만에 23억6181만 달러가 불어났다. 전 거래일(608억2009만 달러)보다 5억1027만 달러 늘어난 수치다.
비상 계엄령 선포와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하자 달러예금의 일별 잔액이 큰 폭으로 움직이고 있다. 계엄령 선포로 1~2시간 만에 원·달러 환율이 40원 넘게 급등해 1446.5원까지 치솟았던 3일에는 차익 실현 수요가 쏠리면서 잔액이 줄었다. 3일 기준 608억5864만 달러였던 달러예금은 4일 602억360만 달러로 하루 만에 6억5504만 달러의 자금이 이탈했다. 5일에는 605억7307만 달러로 다시 오름세를 보였다.
국내 정치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145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달러를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사태가 빠르게 수습될 기대가 낮아지고 있어 원·달러 환율은 1390∼1450원에서 레벨을 높여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탄핵 정국으로 30원 정도 올랐는데도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상방이 열린 상황이다. 미·중 갈등 등 외부 요인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달러화가 모든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여 대외 변수가 평소보다 민감한 가운데 탄핵 불확실성이 시장에 어느 정도 반영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엔화예금은 빠지고 있다. 같은 날 기준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7022억 엔으로 지난달 말(1조712억 엔)보다 3690억 엔 감소했다. 지난해 9월 1조 엔을 돌파했던 엔화예금 잔액은 1년 2개월 만에 1조 엔 밑으로 내려왔다.
지난달 중순만 해도 100엔당 900원이던 원·엔 재정환율은 원화 가치 하락으로 전일 오후 3시 30분 기준 100엔당 957.07원을 기록했다. 8월 5일(964.6원) 이후 최고치다.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이 고점을 기록하는 가운데 엔화자금을 보유하던 투자자들이 매도 타이밍이라 판단해 자금이 이탈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은행의 요구불예금 증가세는 진정되는 모양새다. 전일 기준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10조8867억 원으로 전 거래일(612조4099억 원)보다 1조5232억 원 감소했다.
비상계엄 선포 후 3일 동안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12조 원 이상 늘기도 했다. 이달 3일 600조2615억 원이었던 요구불예금 잔액은 6일 기준 612조4099억 원으로, 12조1484억 원 증가했다. 정치 리스크로 인한 증시 불안이 지속하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 자금이 은행의 대기자금으로 흘러들어 온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