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한미 70주년 기념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연설의 제목은 '자유의 동맹, 행동하는 동맹(Alliance of Freedom, Alliance in Action)'이었다. 연설은 영어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취임식에서 했던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마십시오. 인류의 자유를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물으십시오" 라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는 "이제 인류의 자유를 위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할 것"이라고 스스로 선언했다.
연설의 키워드는 '자유'였고, 43분간의 연설에서 '자유'는 무려 46번 언급됐다. 한국 대통령의 결기에 기립박수는 23번, 박수는 60번 가까이 나왔다.
그로부터 1년8개월 만에 윤 대통령은 국민들을 향해 계엄령을 선포했다. 국회의 정당 활동을 금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을 계엄사의 통제하에 놓는 포고령을 발동했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진입하는 모습을 전국민이 지켜봤다. 박물관 유리 진열관 안의 토기처럼,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계엄이란 유령을 버젓이 되살린 것이다. 국회의 극적인 방어로 계엄은 2시간 천하로 끝났다. 윤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는 결국 단명했다.
긴박했지만 어딘가 어설펐던 12·3 계엄에 대한 진실규명이 필요하지만, 포고령을 보면 윤 대통령이 어떤 마음으로 계엄 카드를 꺼냈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번 포고령은 국회와 언론과 함께 미복귀 의료인을 처단 대상으로 삼았다. 포고령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이자 이번 계엄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들여다보면 모두 윤 대통령이 이기고 싶어 했던 대상들이다. (윤 대통령의 기준으로 볼 때) 국회를 거부권, 탄핵 정국으로 만든 야당, 개혁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한 의료계, 난처한 보도를 하는 언론들. 모두 윤 대통령이 절대 밀리고 싶지 않았던 대상으로 읽힌다. 지지 않겠다는 지나친 의지가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국가긴급권인 계엄 카드를 문제의식 없이 꺼내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수많은 나라를 방문하며 그토록 외쳤던 '자유민주주의' 행보에 스스로 먹칠을 했다. 무엇보다 계엄 선포는 곧 유혈 사태를 의미했던 시대가 있었던 만큼 그런 우려도 예상한 것인지 묻고 싶다.
비상계엄 사태 일주일만에 수사는 윗선, 윤 대통령 겨누는 듯 하다. 계엄 당시 투입 과정에 대한 군 지휘관의 증언과 폭로가 이어지고 있고, 현직 대통령이 출국금지 조치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공수처는 내란 사태 핵심 인물인 김 전 국방장관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날 국회에선 윤 대통령 등의 비상계엄 관련 내란 혐의를 규명할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에서만 2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수습책을 두고 파열음을 내고 있는 여당 의원들이 14일 탄핵 투표에 얼마나 돌아설지 이목이 쏠린다.
계엄 청구서는 혹독할 것이다.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정부 국정 운영은 사실상 마비 위기고, 흔들리는 대외 신인도에 환율과 증시는 흔들리고 있다. 산업계도 환율 쇼크 등에 직격탄을 맞고 있고, 트럼프 새정부 외교엔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은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민주 진영과의 '가치외교'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우리의 평온한 일상은 깨졌다. 포브스는 "이기적인 계엄 선포의 대가를 5100만 한국인이 오랜 기간 할부로 갚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야 모두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실익보다 국민의 안정에 무게를 두고 위기를 수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