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하면 일반적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을 3대 생산지로 꼽지만 최근에는 취향에 따라 칠레, 호주, 뉴질랜드 등 신흥국 브랜드를 즐기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호주 와인은 다채로운 생산 지역과 품종으로 탐험하기 좋은 와인이라는 인식이 있다. 특히 과일 향이 풍부해 초보자가 즐기기에 적합하다고 알려졌다.
연말을 맞아 와인 수입사들이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이는 가운데 '호주 국보'라는 한 와인의 수식어가 눈길을 끌었다. 국보라는 이 와인의 이름은 '펜폴즈'.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국내에서도 유명 와인 브랜드이기도 하다. '와인이 국보로 지정될 수 있다니'라는 생각과 함께 브랜드 스토리가 문득 궁금해져 수입사에 내용을 문의했다. 오래된 와이너리가 모두 저마다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듯 펜폴즈도 혼자만 알고 있기엔 브랜드 스토리가 꽤 흥미로웠다.
펜폴즈는 호주 정부가 최초이자 유일하게 '국가문화재'로 선정한 와인이다. 올해로 180년 역사를 자랑하는 펜폴즈는 영국인 의사 크리스토퍼 로손 펜폴즈(Dr. Christopher Rawson Penfolds)가 호주로 이주해 치료 목적의 주정강화 와인을 생산한 게 그 시작이다. 주정강화 와인은 와인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브랜디를 첨가한 것으로 달달한 맛이 특징이다. 이렇게 도수를 높이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해 수출에도 유리해진다.
시작은 치료 목적이었지만 펜폴즈가 만든 와인은 높은 인기를 얻어 일반 음용으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에 1844년에 매길 에스테이트(Magill Estate)에 펜폴즈 와인 회사를 설립했고, 이후 지속해서 성장해 1907년 호주 최대 와이너리로 우뚝 섰다고 한다.
펜폴즈의 와인이 국보로 지정된 배경은1984년 최초 수석 와인메이커였던 맥스 슈버츠(Max Schubert)의 공이 컸다. 맥스 슈버츠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처럼 주정강화 와인을 만들기 위해 유럽을 방문하던 중 고급 와인에 주목했고 원료 찾기에 돌입해 현재 호주 와인의 주 품종인 '쉬라즈'를 선택한다. 호주 전통기술, 유럽으로부터의 영감을 반영한 정밀한 와인 제조 방식을 결합해 1951년 첫 와인을 생산한다. 이렇게 호주 국보로 지정된 펜폴즈의 '그랜지'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랜지가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무겁고 타닌이 강한 그랜지는 처음에는 이사회의 외면을 받았으며 급기야 1957년에는 생산을 중단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맥스 슈버츠는 그랜지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후 여러 시행착오가 위기를 겪으며 호주 와인 대회에 출품한 '그랜지 1955빈티지'가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세계 50여 개국 와인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명성도 얻었다. 호주 정부는 자국 대표 와인으로 자리매김한 그랜지의 공을 인정해 2001년 그랜지 50번째를 국가 문화재로 등재했다.
펜폴즈의 또 다른 수식어로는 '도전', '모험 정신' 등도 언급된다. 특히 싱글 빈야드(하나의 포도밭)가 아닌 멀티 빈야드(여러 포도밭)에서 공수한 포도를 최적의 비율로 섞어 다채로운 맛을 추구한다는 점이 이런 수식어가 붙는 이유로 꼽힌다. 한 포도밭에서 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드는 고급 와인들의 기존 공식을 깬 나름의 파격인 셈이다. 좋은 와인을 위해서라면 미국 나파밸리, 프랑스 보르도, 심지어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와인 취향은 제각각이라 펜폴즈를 좋아할 이도, 그렇지 않을 이도 있겠지만 국보라는 수식어가 붙는 만큼 올해 연말 한번 도전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을 맞아 로제 샴페인 '펜폴즈 티에노 로제 샴페인 브뤼 NV'도 최근 국내에 출시된 만큼 홈파티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