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GBI 편입 전 한국계 채권에 EU 자금 유입
2001년 이후 상장채권 사라졌다 부활
한국물 유동성 확대 효과…줄줄이 상장 기대
유럽 국가들의 채권 투자금이 한국계 외화채권(KP·한국물)에 대거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상장 채권의 30%가 거래되는 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LuxSE)가 '금융감독원장 인정 해외 주요시장'에 지정되면서다.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한국 외화채가 유럽시장(EU)에 잇달아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는 11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앞두고 한국물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수요 흥행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날 기준 LuxSE에 상장된 한국물 글로벌본드 종목은 총 11개다. 첫 상장은 2001년 KT&G와 2003년 KDB산업은행 채권이었다. 이후 10년 넘게 멈춰있다가 2015년 국민은행 커버드본드가 다시 상장했지만, 5년이 지나 만기가 도래하면서 현재 상장 채권이 남지 않았다. 신규 상장은 사실상 20년 넘게 중단된 상태였다.
한국물이 다시 룩셈부르크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7월 KDB산업은행과 10월 주택금융공사 채권이다. 지난 7일에는 한국수출입은행도 글로벌 투자자를 대상으로 총 3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3년물(변동금리) 4억 달러, 3년물(변동금리) 8억5000만 달러, 5년물 12억5000만 달러, 10년물 5억 달러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이번 수은채는 LuxSE가 해외 주요 시장에 최초 지정된 이후로는 첫 상장이다. 모집 당시 20억 달러 규모 발행을 목표로 했으나, 투자자 400여 곳으로부터 최대 100억 달러 규모의 주문을 받으면서 최종 발행 금액은 30억 달러로 증액했다. 최종 발행금리는 제시금리보다 25bp(1bp=0.01%p) 이상 축소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첫 한국물 발행인데도 견조한 해외 투자 수요를 확인했다는 평가다.
LuxSE의 한국물 상장은 의미가 깊다. 글로벌 최상위권 국제 채권 거래소인 LuxSE는 런던(14%), 파리(10%), 싱가포르(5%) 등을 제치고 전체 글로벌 상장 채권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내 장외기관투자자의 채권은 싱가포르거래소(93.7%)에 가장 많이 상장됐으며, 이어 프랑크푸르트거래소(3.0%) 순이었다. 사실상 그동안 한국물이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거래되기 어려웠던 환경인 셈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무대에서 가장 많은 채권이 거래되는 LuxSE에 상장되면 투자자들의 신인도가 상승해 해외 자금 유입에 긍정적이지만 그동안 비용이나 절차 문제가 까다로워 (상장을) 진행하지 못했다"며 "수출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해외주요시장 지정 정책에 발맞추기 위해 첫 상장에 나섰다"고 했다.
지난 9년간 국내 기업들의 룩셈부르크 상장이 끊겼던 이유는 상장절차가 복잡하고 오래 걸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신 싱가포르거래소로 집중됐지만, 발행 경로가 한정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주요시장 지정으로 국내 코스피, 코스닥 기업들은 LuxSE 채권 상장 시 증권신고서 제출 면제 등 간소화된 채권 상장 절차를 밟게 된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채권 상장에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되고 글로벌 시장에서 유동성 또한 활발해진다는 예상이다.
한편 LuxSE 상장은 국내 외환시장 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계 자금이 유입되면 국내 환율 변동성을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역시 룩셈부르크에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상장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원·달러 환율 안정을 위해 기업 외화대출 규제를 폐지하는 등 해외 자금 유치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전일보다 0.30원 내린 1437.30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