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 한 곳이 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설문지를 돌렸습니다. 올해 시장 전망과 투자 계획 등을 물었는데요. 이들은 올해 투자 업계를 ‘교토삼굴( 狡兎三窟)’이라고 했습니다. ‘잔꾀 있는 토끼는 굴을 세 개쯤 파 놓는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닥쳐올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관세전쟁을 선포했지요. 캐나다와 중국은 대놓고 맞대응을 예고했습니다. 적어도 그의 복귀를 반기는 나라는 없어 보입니다.
이 와중에 일본은 발 빠르게 트럼프 심기를 살피는 중입니다. 대미 투자 실적을 강조하는 한편,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앞서 트럼프도 넌지시 이를 강조했습니다. 지난달 취임 때 “유럽연합(EU)이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 석유와 LNG를 더 구매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인데요. 일본이 이를 놓치지 않고 먼저 나선 것이지요. 그뿐인가요.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본은 미국과 무역 마찰을 피하고자 440억 달러(약 65조 원) 규모의 미국 알래스카 가스관 건설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이렇게 보따리를 싸 들고 7일 미·일 정상회담에 나섭니다. 이 자리에서 LNG 구매·가스관 건설지원 등 투자 선물을 풀어놓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초강대국 미국 횡포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한 일본의 처연한 모습이지요.
우리는 어떤가요. 최상목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합니다. 일본 총리는 투자 보따리를 싸 들고 미국으로 향하는 데, 한국은 앉은 자리에서 “소통을 강화하겠다”고만 합니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주저앉을 이유는 없습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났던 1998년도, 금융시장에 글로벌 금융위기 광풍이 몰아쳤던 2008년도 견뎠습니다. 나라가 안 찾아주면 우리 기업이라도 나서서 트럼프 시대의 기회 요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나마 첨단산업과 전력·소형모듈원전(SMR) 기자재, 화석연료 인프라, 조선 등이 기대감을 키웁니다.
미국은 자국 첨단산업 역량 강화를 위해 시설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는 우리 기업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트럼프는 에너지 수출 확대를 꾀하고 있는데요. 우리 조선업이 발 빠르게 운반선 시장에 대응해야 합니다.
SMR도 기회 요인입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 8000곳 가운데 3분의 1이 미국에 있습니다.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이곳을 노려야 합니다. 트럼프도 미시간주 연설에서 “신속한 에너지 비용 절감을 위해 취임 첫날부터 새로운 시추, 파이프라인, 정유소, 발전소, 원자로를 승인할 것”이라 언급했습니다. SMR 투자 확대 등을 공약한 것인데요. 한국에는 SMR에 도가 튼 기업이 여럿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미국 기업이 중국 대안으로 한국산 발주를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LG이노텍에서 카메라모듈을 공급받아온 애플이 원가 절감을 위해 골랐던 중국 코웰전자 대신 LG 측 발주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시대에 한국이 누릴 기회 요인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눈 씻고 찾아봐야 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점점 다가오는 위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어느 때보다 외교의 절묘함이, 기업의 효율적인 대미 경영전략이 절실한 때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국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는 겁니다. 정국이 혼란에 빠져 있다 보니 대화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엉뚱한 대통령이지만 그래도 부럽기는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엉뚱한 대통령조차도 없는 상황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