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문 참여 전문가들은 앞서 2022년 진행된 평가에선 여러 부문에서 한국 손을 들어줬다.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기술, 반도체 첨단 패키징기술, 차세대 고성능 센싱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엔 다르다. 2년 만에 전반적으로 중국에 추월당한 것으로 판독됐다. 최고 기술 선도국을 100%로 봤을 때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기술 분야는 한국이 90.9%로 중국의 94.1%보다 낮은 2위로 분석됐다. 고성능·저전력 인공지능 반도체기술은 한국이 84.1%로 중국 88.3%보다 낮았다. 전력반도체는 한국 67.5%, 중국 79.8%였다.
중국이 반도체 기술 자립 의지를 드러낸 것은 약 20년 전인 2006년이다. 당시 중국 국무원이 제시한 16개 대형 과제에 집적회로(IC) 반도체가 포함됐다. 2010년 ‘7대 전략적 신흥산업’, 2012년 ‘12차 5개년 계획’의 20대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2015년 ‘중국제조 2025’에선 반도체를 핵심 과제로 꼽았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중국 역량이 강산이 두 번 바뀔 기간에 획기적으로 발전한 것을 이상하다고 할 순 없다. 이상한 것은 K-반도체다. 왜 중국에 따라잡히다 못해 추월까지 당한 것인가.
반도체 기술은 반도체 경쟁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술력 전반을 좌우한다. 전 세계를 뒤흔든 딥시크 쇼크가 좋은 예다. 반도체 설계 강자인 화웨이 등이 그 배후에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첨단 장비 수출 규제를 가하지만 중국의 기술 자립은 날로 현실화하고 있다. 우리는 그간 어떻게 시간을 낭비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라는 대내외 평가에 취해 낮잠만 잔 것 아닌가. 이솝 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도 곱씹어야 할 판국이다.
글로벌 동향은 심상치 않다. 한국 기업이 80%가량 장악한 D램 시장에서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5%를 기록했다. 올해는 12%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메모리 기술격차도 줄고 있다. KISTEP의 분석은 빙산의 일각이다.
한국은 ‘초격차’ 긍지를 속히 되찾아야 한다. 기업·학계 각성이 시급하다. 반도체 기술개발 등을 뒷받침할 각종 지원과 입법, 규제 완화도 서둘러야 한다. 우리 기업이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중국 급성장이 아니다. 벼랑 끝에 몰린 K-반도체도 아니다. 국내외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주 52시간 예외 문제를 놓고 대치를 거듭하며 반도체특별법 처리조차 하지 못하는 정치권 행태가 가장 괴상하고 초현실적이다. 낮잠 자는 토끼를 깨우면 큰일이 난다는 것인가. 특히 화이트 이그젬션은 안 된다고 생고집을 부리는 더불어민주당은 왜 반도체 산업의 발목을 붙잡는지, 국민이 알아듣기 쉽게 변명이든 설명이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