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고 일어났더니 무슨 일이…"
간밤 미국 증시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혼란의 중심에는 그간 미국 주식의 상승을 선두에서 이끌어온 테크주가 있는데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동안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주가가 주저앉았습니다.
테슬라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기업 시가총액 1위인 애플, 시총 3위 엔비디아,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 메타 등 빅테크 전반이 하락을 기록했는데요.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와 S&P 500지수,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 등 뉴욕증시의 3대 지수도 일제히 급락했죠.
전날(9일)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의 살벌한 '경고'도 재조명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최근 주식 시장의 하락세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결국 대규모 붕괴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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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도 본격적으로 고개를 든 상황인데요. 일각에서는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금 미국 증시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불확실성'인 만큼 투자자들이 성장 전망을 다시 재고 있다는 건데요. 글로벌 머니무브(자금 이동)이 탄력을 받을지도 주목되는 상황입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따르면 이날 애플 주가는 전거래일보다 약 4.85% 하락한 227.48달러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이에 따라 시총도 3조5913억 달러에서 3조4170억 달러로 쪼그라들었죠. 하루 만에 1740억 달러(약 253조 원)가 사라진 겁니다.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 주가도 이날 5.07% 빠지면서 106.98달러에 거래를 마쳤는데요. 엔비디아 주가가 종가 기준 110달러 밑으로 떨어진 건 지난해 9월 10일(108.08달러) 이후 6개월 만입니다. 시총 역시 7일 2조7500억 달러에서 이날 2조6080억 달러로 1420억 달러가량 줄었죠. 엔비디아의 주가가 종가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1월 6일 3조6600억 달러와 비교했을 땐 두 달 만에 1조 달러가 증발했습니다. 우리 돈으로는 약 1459조 원입니다.
이 밖에도 마이크로소프트(-3.34%), 아마존(-2.36%), 알파벳(-4.60%), 메타(-4.42%) 등 '매그니피센트 7' 기업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는데요. 이날 하루 사라진 시총만 7740억 달러, 우리 돈으론 약 1129조 원에 달했습니다.
특히 테슬라 주주들은 비명을 내질렀습니다. 이날 하루 만에 15.4% 급락해 222.15달러에 장을 마감한 건데요. 장 중 한때는 220.66달러까지 추락하면서 2020년 9월 8일(21.06%)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시총 역시 7146억 달러로, 전거래일(약 8449억 달러) 대비 1303억 달러(약 190조2000억 원)가량 줄어들었습니다.
서학 개미(미국 주식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테슬라와 엔비디아가 가장 사랑받는 종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7일 기준 테슬라와 엔비디아의 보관 금액은 각각 165억3952만 달러(약 24조 원), 102억312만 달러(약 15조 원)로 나타나며 1, 2위를 기록했죠.
그러나 이들 종목이 최근 하락세를 이어오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한숨도 깊어지고만 있는데요. 11일(한국시간) 오후 기준 네이버페이 '내 자산 서비스'와 연동한 테슬라 투자자 30만2829명의 평균 단가는 39만5934원으로, 평균 수익률 -18.25%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성적은 더욱 처참(?)합니다. 테슬라 주가의 하루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ETF '테슬라 2X 레버리지'(TSLL)의 평균 손실률은 63.02%를 기록했죠. 반도체 지수 일일 상승률의 3배를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반도체 불 3X 셰어스'(SOXL), 엔비디아 주가의 일일 상승률을 2배 추종하는 '그래닛셰어스 2.0X 롱 엔비디아 데일리(NVDL)도 각각 40.23%, 33.58%의 평균 손실률을 기록했습니다.

시장이 흔들린 가장 큰 원인으로는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거론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방송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경기 침체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런 예측을 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우리는 과도기에 있다. 우리는 부를 다시 미국에 가져오고 있다. 매우 큰 일이다. 이것(성과를 만드는 데엔)은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답했습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전선을 확대하고, 상대국들은 이에 맞서 보복 관세 등 대응책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이미 시장에서는 올해 미국 경기가 침체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의 관세 정책 계획과 관련해서는 "일부는 올릴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며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즉답을 피했습니다.
모틀리 풀 자산운용의 셸비 맥파딘 애널리스트는 뉴욕타임스(NYT)에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들의 정책 목표가 고통을 줄 것이라고 태연한 표정으로 인정한 첫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반센 그룹의 최고 투자책임자 데이비드 반센도 "관세를 올리는 것보다 관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언제까지 오를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훨씬 더 나쁘다"고 지적했죠.
트럼프 대통령은 6일 또 다른 기자회견에선 '주식 시장의 반응 때문에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유예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난 시장을 보지도 않는다.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 벌어지는 일들 덕분에 미국은 매우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장기적인 미국 경제에 집중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건데요. 시장에서는 '단기간의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경제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이 발언을 해석했습니다. 결국 패닉 셀(투매)이 이어지면서 나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 급락, 인플레이션 충격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22년 9월 13일(-5.16%)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이에 더해 테슬라는 전기차 판매량 부진, 머스크 리스크 등에도 타격을 입었는데요. 유럽 최대 시장인 독일에서 테슬라 올해 1~2월 신차 등록 대수가 전년 대비 70%가량 급감했으며, 중국 상하이 공장의 2월 출하량은 49% 감소해 2022년 7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머스크의 정치 활동으로 테슬라 브랜드에 대한 반감 역시 확산하고 있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역시 생산 차질 및 가격 상승 가능성을 키우는 중이죠. 테슬라에 악재가 산적해 있는 셈입니다.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에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미 대형은행들도 경제 전망을 점차 비관적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는 올해 미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을 종전 30%에서 40%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극단적인 행정부 정책을 주된 배경으로 꼽았죠.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이날 종전 2.4%에서 1.7%로 대폭 낮춰 조정했고요. 여기에 12개월 내 경기 침체 확률을 종전 15%에서 20%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이보다 앞선 지난주에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낮춘 바 있습니다.
특히 미국 주식의 비중을 축소하고 중국, 유럽 등 미국 밖의 증시 비중을 높이라는 취지의 조언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씨티그룹은 미국 증시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낮추고 중국에 대한 추천 등급을 상향 조정했습니다. 더크 윌러 자산배분 글로벌 책임자는 "미국 경제의 뉴스 흐름은 앞으로 몇 달 동안 다른 국가를 밑돌 가능성이 높으며 적어도 전술적으로는 미국의 예외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을 최소 3~6개월 중립으로 보고 미국 경제지표가 더 부정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반면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기술혁신, 기술 부문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원, 저렴한 밸류에이션 등을 고려할 때 중국 주식은 최근 랠리 이후에도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죠.
HSBC은행은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이유로 미국 증시의 등급을 '중립'으로 낮췄는데요. 반면 영국을 제외한 유럽 증시에 대한 평가는 '비중 축소'에서 '비중 확대'로 두 단계 높였습니다. 알라스테어 핀더 HSBC 글로벌 주식 전략가는 "미국 증시에 부정적으로 돌아서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현재 다른 곳에 더 나은 기회가 보인다"고 짚었습니다.
글로벌 투자 리서치 기업 BCA리서치도 "관세와 정부효율부(DOGE)가 미국 경제를 경기 침체로 이끌 수 있다"며 미국의 주식 등급을 '비중 축소'로, 채권과 현금은 '비중 확대'로 투자 전략을 변경했고요. JP모건은 독일의 재정 완화 계획에 힘입어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경제 성장이 촉진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유로존의 성장률은 종전 예상보다 0.1%p 높아진 0.8%가 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실로 미국 S&P500은 올해 들어 4.5% 가까이 하락했지만, 유로 STOXX50와 독일 DAX40은 각각 12%, 13%가량 상승한 바 있습니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미국 증시에선 '방어주'가 강세를 보인 반면, 유럽 증시에선 '경기 민감주'가 강세를 보였다"며 "미국 경기는 '현재' 좋지만, 점차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증시에) 반영되고 있다. 유럽 경기는 현재 나쁘지만, 더 많은 재정 부양책과 금리 인하로 향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증시에) 반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죠.
앞서 유럽연합(EU)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한도를 완화해 최소 8000억 유로(약 1229조 원)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요. 특히 독일은 대규모 재정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1997년 이후 가장 많이(0.31%p)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JP모건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이 앞으로 수개월간 유럽의 경제 성장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도 경고했습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유럽 증시에도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JP모건은 올해와 내년에 유로존의 인플레이션도 약간 상승할 수 있다고도 부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