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서도 금융위ㆍ금감원 대립
치솟는 가계부채 관리 만전 기해야
6년 전 ‘서초동 일화’를 소환한 것은 지탄받는 은행들 사정이 눈에 밟혀서다. 요새 은행들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변덕스러운 대출 정책이다. ‘풀었다, 조였다’를 반복하다 보니, 도대체 뭐가 맞느냐는 금융소비자들의 불만이 많다고 한다. 대출창구 직원이 민원인 고충 상담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은행별 대출 조건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만 따져봐도 주택구입자금 대출은 천차만별이다. 주택 유무에 따라, 지역에 따라, 기존 주택 처분 기한에 따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한도와 만기도 차이가 크다. 전세자금대출 조건도 은행별로 제각각이다.
웬만한 수준의 상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인터넷을 뒤지고 열심히 발품 팔아 조건에 맞는 은행을 찾은 다음, 대출창구에서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게 그나마 해결책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만도 하다.
은행들만 탓할 계제가 아니다. 바라봐야 할 곳은 은행의 오락가락 대출 정책 시작점이다.
연초 은행의 가계대출 총량 목표 ‘리셋’에도 대출 문턱이 낮아지지 않자 지난 2월 금융당국 수장들은 “대출금리를 낮출 때”라고 은행권을 압박했다.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기준금리 인하가 대출금리에 반영돼야 한다며 의기투합했다. ‘점검’, ‘분석’ 등 은행들이 몸서리치는 단어들도 동원했다. 은행권은 일제히 가산금리를 내리는 방식으로 순응했다.
하이라이트는 3월이다. 금융당국은 대출 빗장을 풀라고 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를 뒤집었다.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해제 등으로 집값이 들썩이자 17일 주재한 가계부채 점검 회의에서 은행 자체적으로 가계부채 관리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했다. 이틀 뒤 서울시가 토허제 지역을 확대 재지정하자 이번에는 가계대출 모니터링을 강화한다고 했다. 촌극이 따로 없다.
이 와중에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볼썽사납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먼저라는 김 위원장과 상법 개정에 찬성하는 이 원장의 대립은 할 말을 잃게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상법 개정안 자체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금융당국 수장들이 보여 준 모습은 실망감을 더한다. ‘직을 걸겠다’는 과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던 이 원장은 고위급 협의체인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에 돌연 불참하기도 했다.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 경제 사령탑의 일원으로서 본분마저 제쳐 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 가지, 이들의 대립이 구조적 권한 다툼의 연장선이 아니길 바란다. 과거 금융위와 금감원은 한 몸(금융감독위원회)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분리되면서 금감원은 금융위로부터 감독 권한을 위임받아 수행하고 있다. 정책‧감독을 총괄하는 금융위는 금감원 예산을 쥐고 있다. 금감원의 독립성 확보 문제는 아직 진행형이다.
금융당국의 정책이 일관되지 않으면 시장 참여자들은 혼란을 겪는다. 결국 금융소비자인 국민들이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부동산 거래와 대출 실행 사이 1~2개월의 시차를 고려하면 2월 토허제 반짝 해제 여파로 인한 후폭풍이 머지 않았다. 7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시행을 앞두고 ‘막차 수요’까지 몰리면 앞으로 어떤 일이 더 벌어질지 모른다. 이미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빚더미에 우리 경제가 결딴나기 전에 금융당국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