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서부터 전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을 견인해온 제조업계가 해외 이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엔화 가치가 달러화에 대해 사상 최고치에 육박하면서 일본 경제가 거대한 구조 개혁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는 지난 주 간판 차종인 하이브리드 차 ‘프리우스’를 11월부터 태국에서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엔화 강세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해외 생산 비율을 높이기로 한 것. 도요타는 5년 전 48%였던 해외 생산 비율이 올해 57%로 사상 최고에 달할 전망이다.
도요타는 올해 하반기 예상환율을 현행 달러당 90엔에서 80엔으로 수정키로 했다. 달러당 81엔대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더불어 하반기 1500억엔의 환차손을 실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도요타는 엔이 달러당 1엔 오르면 영업이익이 연간 300억엔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닛산자동차의 해외 생산 비율은 지난해 66%에서 올해는 71%로 상승할 전망이다. 닛산은 올 여름 태국에서 생산한 소형차 ‘매치’를 역수입, 주력 차종을 해외에서 생산해 역수입한 첫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가 됐다.
무라타제작소는 오는 2013년도까지 해외 생산 비율을 현재의 두 배로 늘려 30%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캐논도 올 상반기 해외 생산 비율이 사상 최고인 48%에 달했다.
경제산업성이 8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기업 중 40%가 엔이 달러당 85엔이 되면 생산과 연구 개발 거점을 해외로 옮긴다고 응답했다. 이같은 답변이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소니는 지난 1분기(4~6월) TV 사업이 7년 만에 흑자 전환했다. 소니는 해외 생산을 늘린 것이 도움이 됐다며 해외 생산 비율을 한층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즈호 증권 리서치&컨설팅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 기업의 24%가 올 상반기 세제 전 이익을 상향 수정했다. 하향 수정한 기업은 3%에 불과해 해외 이전이 실적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WSJ은 일본 정부가 지난 30년간 내수 주도형 성장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출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WSJ은 기업들의 해외 이전으로 가파른 엔고에 의한 악영향을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경제 성장과 유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7월 일본 제조업계의 노동인구는 1029만명으로 총무성이 통계를 시작한 2002년의 1200만명 이래 최저를 나타냈다. 실업률은 여전히 5%대에 머물며 작년 기록한 전후 최악인 5.6%를 약간 밑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일본 내수를 한층 더 침체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10년 이상 계속되는 심각한 디플레의 영향으로 일본 소비자들은 물가가 계속 내릴 것을 기대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 상황.
여기다 인구 감소와 저축을 깨는 퇴직자 비율 상승으로 내수 부진이 계속돼 일본 경제 성장은 앞으로도 어두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간 나오토 정부가 내수를 자극하기 위해서 밝힌 5조엔 규모의 추가 경기부양책은 공공프로젝트가 대부분이어서 기존의 뿌리기식 금권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법인세 인하나 이민 정책 완화 등 구조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성장 동력은 앞으로도 수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닛코 자산운용의 존 베일 수석 글로벌 투자전략가는 “달러는 일본에게는 가장 중요한 통화지만 최근 몇 년간 영향력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며 “한국이 미국 시장에서 일본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만큼 원화는 일본 정부에겐 두 번째로 중요한 통화”라고 말했다.
25일 한때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80.75엔을 기록했다. 원화에 대해서는 1116.3원에 거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