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가 빚더미 위에 올라 앉은 모양새다.
정부에서는 당초 올해 국가채무가 4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지만 경기회복으로 세수가 늘면서 최종 394조4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집계되자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국가채무 수준은 심각한 상태다.
문제는 정부의 국가채무 계산방식이 국제기준과 다르다는 점이다. 국제기준에 맞춰 국가채무를 계산할 경우 규모는 1000조원을 넘어선다. 이미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얘기다. 우선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너무 빠르다.
2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일반회계 적자국채 발행규모는 29조3000억원에서 23조3000억원으로 6조원 줄었다. 적자국채는 일반회계에서 세입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를 말한다.
올해 국세수입은 당초 예상 170조5000억원보다 4조6000억원 더 많은 175조1000억원이 걷힐 것으로 전망됐다. 또 지난해 세계잉여금(정부 예산을 초과한 세입과 예산 가운데 쓰고 남은 세출불용액(歲出不用額)을 합한 금액) 3조6000억원 중에서 1조4000억원을 올해 세입으로 포함하면서, 국가채무는 당초 예상보다 6조원 줄어든 394조3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나라빚 400조원 시대를 간신히 막아내긴 했지만 10년 만에 3.5배 이상 늘어났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00년 111조2000억원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2004년 203조7000억원 △2005년 274조9000억원 △2006년 282조7000억원 △2007년 299조2000억원 △2008년 309조원 등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다. 그러나 2011년 436조8000억원, 2012년 468조1000억원 등 당초 정부의 전망치를 보년 내년에는 꼼짝없이 나라빚은 400조원을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추경과 감세를 통해 66조7000억원을 재정에서 투입했다.
그런데 국제기준에 맞춰 우리나라 국가채무를 계산해보면 재정건전성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국제기구 등이 사용하는 국가채무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 출연금을 받거나 각종 부담금을 징수하는 공공기관의 부채·각종 기금의 부채 등이 모두 포함돼 있지만, 우리 정부는 국가채무에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차입금·국고채무부담만을 포함시켜 사실상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부채 중 상당수가 빠져 있다는 것.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유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준에서는 단순히 국구채무가 아니라 일부 공공기관 부채가 포함된 일반정부의 총 금융부채를 산출하고 있다”며 “한국은 일반·특별회계·기금을 중심으로만 재정 통계를 작성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기준으로는 국제적인 비교를 통한 한국 정부의 부채 수준이 낮다고 단정짓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2007년 말 기준 정부부채를 국제기준으로 추정해 보면 688조4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76.4%에 이른다. 이는 정부가 공식 발표한 국가채무 298조9000억원, GDP의 33.2%보다 배 이상 많은 규모다.
옥 교수는 △중앙정부 특별회계 전체 부채 41조7000억원 △중앙정부 기금 전체 부채 88조5000억원 △중앙정부 준정부기관의 부채 68조6000억원 △지방정부 준정부기관의 부채 21조9000억원 △정부부문 전체의 민간투자사업 부채 20조6000억원 △통화안정증권 등 준재정활동의 거래 재설정 148조2000억원 등을 합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목소리는 정치권에서도 나왔다. 김낙성 자유선진당 의원은 “준 정부기관 및 공기업 부채 310조6000억원, 지방공기업 부채 50조원을 합산하면 우리나라 국가부채 규모는 761조 수준으로 GDP의 76%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런 국가부채 규모는 국민 1인당 1577만원, 4인기준 한 가구당 6000만원이 넘는 빚을 안고 사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이어 “국가부채 규모가 800조원에 달하게 되면 현재 채권발행금리 수준으로 연 30조원의 이자가 발생하고, 이는 하루 이자만 8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라고 우려했다.
조영택 민주당 의원도 “현 정부의 무리한 구조조정과 정부사업 떠넘기기로 공기업 부채가 급증하고 있다”며 “최근 4년간 공기업 부채비율은 2006년 96.8%에서 2009년 152.9%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미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조 의원은 “부채가 많은 주요 공기업에 대한 경영진단과 재정건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정부사업 떠넘기기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도 이에 따라 국가채무란 단어를 없애고 일반정부총금융부채를 사용키로 하는 등 2011 회계연도 결산부터 현금주의 방식에서 발생주의 방식의 국제기준에 맞게 바꾼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가 국가채무 범위에 공기업 부채를 제외할 계획이어서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부 관계자는 “IMF 발간물에 그와 같은 문구가 있을 뿐 일반정부총금융부채규모에는 공기업 부채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 국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