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를 막론하고 스마트폰이 가져다 준 열풍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고 2011년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한국에서 스마트폰 열풍이 불기도 전인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모바일 게임의 대중화를 예상하고 과감히 모바일 게임 사업에 뛰어든 ‘선견지명(先見之明)’의 소유자가 있었으니 바로 박지영(37) 컴투스 대표다.
박 대표에게는 늘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여성 이외에도 분명 남다른 무엇인가가 있어 보였다. 박 대표는 1998년 고려대 컴퓨터공학과 동기 2명(남편인 이영일 부사장 포함)과 함께 컴투스를 설립한 개발자 출신 CEO다. 대학 졸업 후 사업에서 세 차례나 고배를 마실 정도로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난관을 잘 극복하고 지금의 컴투스를 일궈냈다.
박지영 컴투스 대표는 지난해 내부적으로 가장 바쁜 해였다고 회고했다. 2011년 전세계 모바일 게임 시장이 98억 달러로 거대한 시장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개발 인력의 70% 이상을 스마트폰 콘텐츠 개발에 투입하는 등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준비에 시간을 할애했다.
만남을 가진 날에도 그녀는 바빴다. 인터뷰를 마치고 몇 시간 후엔 미국 지사 출장 일정이 잡혀 있었다. 회색 터틀넥 니트를 입은 박 대표는 화려하진 않지만 편안해 보였으며 작은 체구에 목소리는 작고 조곤조곤했지만 긍정적 에너지가 넘쳤다.
박 대표에게 지난해는 더욱 특별한 해였다. 영국의 모바일 콘텐츠 전문 월간지 ‘ME’가 뽑은 모바일 콘텐츠 업계 세계 TOP 50 여성 경영인에 2년 연속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지난 8월 애플 앱스토어에 서비스를 시작한 스마트폰용 게임 ‘슬라이스 잇(Slice It)!’이 2주 만에 세계 31개 국가에서 유료 앱 전체 1위에 올랐으며 이 게임으로 2010 대한민국 게임대상 최우수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온라인 게임과 콘솔게임을 제치고 모바일 게임이 최초로 선정된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 지난해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 어떠셨나요.
▲ 매번 새로운 트렌드나 시장변화가 있을 때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모바일과 특히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집중해 왔기 때문에 빠른 투자를 한 덕분이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고 싶은 욕심이 사실 많았다.
-‘슬라이스 잇!’이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것의 의미는?
▲ 홈런배틀3D와 슬라이스 잇은 순수하게 컴투스가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자리매김하고 경쟁력 있는 게임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에서 통하는 게임과 해외에서 통하는 게임이 다르지 않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시장을 잡을 수 있다. 그 부대성과로 스마트폰 게임이 역대 최초로 최우수상인 국무총리상을 받게 된 것이다. 슬라이스 잇은 스마트폰만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아이디어였고, 그것을 게임으로 풀어낸 과정이 인정을 받았다.
- 앱스토어에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개의 애플리케이션이 쏟아지고 있는데 컴투스 게임이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이유는?
▲ 슬라이스 잇에 대해 일본 게임 개발사 관계자한테 들은 얘기가 컴투스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타이틀이 아닌가라고 해서 뿌듯했다(웃음). 특히 스마트폰 하면서 즐거웠던 것은 사용자 자체가 우리라는 것. 우리가 해보고 재밌어야만 성공하는 게임이 된다. 그게 사실 즐거운 과정이다. 특히 컴투스 식구들은 건설적인 토론이나 논쟁을 자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 게임에 대한 규제는 점점 더 강화되고 있고 오픈마켓 사전 심의제도와 관련된 게임법이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국내 앱스토어에는 게임 카테고리가 없어지는 등 게임 업계에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응방안은?
▲ 플랫폼 홀더인 애플이나 구글이 보통 대부분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심의를 하는데 구글의 경우도 등급분류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분명 사회적 책임을 하는 회사이고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오픈마켓이기 때문에 유저일 수도 있고 업체일 수도 있고 서로 간에 경쟁이 심하다. 규칙을 어겨 문제가 생기면 바로 내린다. 플랫폼 홀더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 스마트폰 등 모바일 게임도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청소년들이 게임을 할 수 없도록 한 ‘셧다운제’의 적용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 스마트폰 게임에서는 유저 정보를 받지 않는데 셧다운제 도입을 위해 유저 정보를 받게 되면 개인정보보호 이슈가 논란이 될 공산이 크다. 한 회사에 개인의 주민등록번호 등 DB가 다 들어가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불성설’이다. 정말 청소년들의 과몰입 문제를 해소하려면 법을 만들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책임감 있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원하는 목적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 주변 가족과 친지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컴투스의 게임이 있다면?
▲ 슬라이스 잇이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할 때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게임이다. 두뇌개발에도 좋고 가족들이 공통의 화제거리를 꺼낼 수 있는 게임이라서 추천한다. 또 홈런배틀3D의 경우도 복잡한 게임은 아니지만 전세계 유저를 다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태극기를 달고 게임 룸에 들어가게 되는데 국가대표라는 뿌듯함과 함께 전세계 사람들을 만난다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게임이다.
▲ 학교 다닐 때 자취를 했었는데 과일을 직접 돈 주고 사서 챙겨먹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그래서 한 5년 째 직원들에게 과일도시락이나 샐러드를 주기 시작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제도이고 일하는 과정이 즐거워야 애정도 생기고 좋은 생각이 나며 논쟁을 하더라도 그 과정이 즐거운 것이다. 그것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또 5년 근무를 하면 그 다음 해는 한 달 휴가를 갈 수 있는 ‘안식월’ 제도도 있다.
-2살, 4살짜리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가 쉽지 않을텐데 비결이 있다면.
▲ 초인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절대 초인적인 사람이 아니다. 가족이 제일 든든한 후원자이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가장 좋은 것은 회사에 오면 회사 일만 고민하고 집에 가면 또 회사일은 잊고 애들에 대한 고민만 하는 것이다.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고 슬기롭게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으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본인이 가장 행복한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게임 시장 전망은?
▲ 올해 스마트폰용으로 30개 이상의 게임을 출시할 예정이다. 태블릿PC에 대한 기대는 많이 하고 또 준비도 하고 있지만 스마트폰처럼 단기간에 확 크진 않을 것으로 본다. 스마트폰은 게임과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기가 됐고 스마트폰 시장이 열린 것이 모바일 게임업체들에겐 큰 행운이다. 과정은 힘들지만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