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지나간 과거는 걸어서 더듬기에 좋다. 온금동에서 유달산을 거쳐 일본인 골목, 도심 오거리까지는 서너 시간이면 족하다. 대부분의 길목들이 항구도시의 100년 세월을 담아낸 터전들이다.
온금동은 목포에 시가지가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전 뱃사람들이 살던 마을이다. 마을은 유달산의 가파른 경사 길에 기댄 채 바다를 맞대고 들어서 있다. 온금동은 ‘따뜻하다’는 의미로 예전에는 ‘다순구미’, ‘다순금’으로 불렸던 달동네였다. 알록달록한 슬레이트 지붕길 사이로 스며드는 볕은 수십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 바다에서 들어서는 골목길 초입에는 1938년 세워진 조선내화 건물이 굴뚝을 올린 채 덩그러니 남았다. 뱃사람들의 마을인 만큼 동네에 전해지는 사연에도 그들만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선원들이 집에 머무는 조금 때 임신돼 태어난 아이들은 ‘조금 새끼’로 불렸고, 우물가에는 바다로 나섰다 돌아오지 못한 뱃사람들의 비석도 세워져 있다.
서산동 언덕 위에 서면 목포의 옛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옛 도심의 노른자위인 유달동 일대 일본인 거리는 산자락 달동네와는 갖춰진 모습이 다르다. 바둑판 모양의 큰 길을 내고 반듯한 골목과 가옥들이 자리 잡았다. 1897년 일제에 의해 목포항이 본격적으로 개항하면서 일본인들은 유달동 일대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근대사 유적을 가장 확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구 일본영사관 건물이다. 목포 최초의 서구식 건물로 1900년 완공됐으며 일본인 거주 지역을 내려다보는 목 좋은 위치에 들어서 있다. 목포시청, 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 등으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붉은 색 벽돌의 단아함은 여전하다. 건물 앞으로는 1.2번 국도의 기점을 알리는 표지판이 자리를 채운다.
일본식 정원인 이훈동 정원 역시 일본풍의 가옥과 오래된 향나무들이 옛 풍취를 전한다. 일본인 부호가 지었던 정원을 조선내화 사장이었던 이훈동씨가 사들였는데 유달산을 정원으로 끌어들인 풍경이 탐스럽다. 이곳은 예전 드라마 ‘모래시계’, ‘야인시대’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골목으로 내려서면 예전 동양척식주식회사였던 목포근대역사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내부에는 예전에 금고로 쓰던 방도 남아 있으며 목포의 근대사를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속 목포는 목포역 일대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자라목 같은 땅이었다. 현존하는 목포의 대부분은 간척사업으로 일궈진 셈이다.
목포로의 추억여행은 오거리에서 무르익는다. 예향의 도시인 목포에서 오거리는 예술의 중심지였고 그 중심에 다방이 있었다. 허건, 차범석, 김지하 등 당대 이름을 날렸던 작가와 시인들이 다방에 모여 예술과 멋을 논했다. 묵다방, 민물다방, 새마을 다방 등이 70~80년대를 주름잡던 다방이었다. 최근에도 오거리 일대에는 몇몇 다방들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주인도 간판도 바뀐 게 대부분이다. 오거리는 하당 등 신도심이 번화해지면서 예전에 비하면 그 모습이 많이 퇴색했다.
목포의 근대사를 더듬고 났다면 본격적으로 목포의 봄을 즐기면 된다. 3월말이면 유달산 자락에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릴 시기다. 유달산을 에돌아 북항으로 이어지는 일주도로변에는 개나리가 숨을 고른다. 조각공원 사이에 난 산책로과 식물원 일대 꽃들의 노란색 향연이 아름답다. 개나리 외에도 유달산 곳곳에는 동백, 벚꽃들이 진한 봄소식을 전한다. 매년 4월초에는 유달산 꽃축제도 열린다.
유달산에 옹기종기 흩어져 있는 정자에서 목포 시내를 내려다 보면 지나온 발자욱이 한눈에 그려진다. 꽃향기 너머로 달동네, 일본인 골목 등이 눈앞에 알알이 박힌다. 목포는 식당과 슈퍼 코앞을 지나는 기찻길이 남아 있는 정겨운 추억여행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