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위기, MB “내년 예산 재검토”지시… 정치권 정책기조 변화 예고
세계 경제위기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의 내년도 예산편성 기조에도 적잖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당초 정부는 올해보다 7.6% 인상된 332조6000억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에 따라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경기부양 등 실물경제와 직결된 예산은 증액하고 정치권의 선심성 예산은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10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금융시장 위기관리를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긴급 소집해 “내년 예산을 최초에 편성할 때는 이번에 생긴 글로벌 재정 위기를 감안하지 못했으니까 이번 상황을 고려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휴가 중인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참석해 상황이 긴박함을 입증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과 남유럽 재정위기 등 세계 경제 위기로 국내 경제가 타격을 입은 만큼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때문이다.실제로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GDP 대비 33.5%로 다소 낮은 편이지만, 채무 증가속도가 빨라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는 등 안심할수 없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과 경제장관들은 이번 위기를 미국 정치의 리더십 문제에서 비롯된 재정위기와 복지 포퓰리즘에 따른 그리스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글로벌 재정위기로 규정했다.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제시하는 무상보육·무상급식·등록금 인하·저축은행 피해 보상 등이 결국 재정 건전성을 해칠 주범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리스가 10년 전에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지금 고통 받고 있지 않느냐”며 “오늘 세운 정책이 10년 후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책임감을 가지고 정부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경기부양 등 실물경제와 직결된 예산은 우선순위에 두고 증액을 검토하되 정치권의 선심성 예산은 대폭 축소하거나 후순위로 다룰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대통령은 또 “선거를 치르는 사람은 오늘이 당장 급하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대한민국이 제대로 가도록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정치권을 정면 겨냥했다.
여야도 재정건전성 문제는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김무성 한나라당 전 원내대표는 “그리스 선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국가발전의 장기적 목표에서 재정대책을 제로베이스에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을 비롯한 각 정당의 정책기조 또한 일정부분 변경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한나라당의 한 정책위 관계자는 “그간의 정책들이 재정건전성을 고려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예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