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은행에서 임원을 다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해 명예퇴직은 내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경기까지 나빠지고, 막상 나오고 보니 은행에 적을 두고 있었던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명예퇴직은 은행의 ‘군살빼기’ 제도 중 하나다. 인력을 줄여야 겠는데 무턱대고 해고할 수는 없으니 직원에게는 특별퇴직금을 지급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기 위해서다. 은행권의 명예퇴직 제도는 지난 1992년 조흥은행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이 실시하고 있다.
김씨는 “솔깃해서 받아들였지만 같이 명퇴한 은행원 중에 재취업이나 창업에 성공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명퇴 제도가 강제 구조조정은 아니지만 조직 몸집을 줄여야 한다는 차원에서 진행되는 만큼 바람직하지 만은 않다”고 말했다.
명예퇴직이라고 해서 ‘명(明)’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은행권이 잇따라 명에퇴직을 실시하는 것은 그만큼 은행의 직업 안정성이 떨어졌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은행은 명예라는 수식어를 빌미로 “나가달라”고 압박하기도 한다. 지난 5일부터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스탠다드차타드(SC)제일은행이 이렇다.
SC제일은행은 각 지역본부장에게 명예퇴직 대상인 35세 이상 직원을 면담하도록 지시했다. 각 지역본부에 명예퇴직자 숫자를 할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회를 통해 되도록 많은 직원을 내보내겠다는 의지를 직원들에게 전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올해 12월30일 기준 만 35세 이상에 10년 이상 근무자를 명퇴 신청 대상으로 삼았다.
제일은행에 지난 1996년 입사한 이은주(가명·42)씨는 회사가 명예퇴직을 실시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덜컹했다. 최근 상사와 면담을 마치고 나서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씨는 “맞벌이를 하다 보니 밤 늦게 들어가 새벽 2시까지 자녀의 숙제를 챙겨주다 잔 적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은행에 남아있기를 원했다. ‘명예퇴직을 고려해 보지 않겠느냐’는 상사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고 털어놨다.
컴컴한 새벽에 우유갑에 흙을 담고 식물을 심는 딸 아이를 숙제를 해주며 버틴 은행이었다. 남편의 “밥 차려 주지 않는다”는 잔소리는 이젠 대수롭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은행이 은연 중 명예퇴직을 종용하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명예퇴직이 일부 직원에게는 ‘강제퇴직’과 다름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어떤 조직이든 효율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는다. 다만 은행권 명예퇴직 바람은 안정된 직장이란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