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2일 1127.50원에서 지난 25일 1185.50원으로 5.1% 올랐다. 이는 재정위기의 장본인인 유로화(5.3%)의 변동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은 아시아 통화들 중에서는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미 달러화 대비 싱가폴 달러는 3.3%, 말레이사아 링기트 3.8%, 태국 바트 2.9%, 인도네사아 루피아는 0.8% 씩 가치가 떨어졌다(환율 상승).
원화가 대외 여건 변화에 취약한 통화란 점이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대외 여건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환율이 크게 오른 것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 때문인데 다음달 17일 그리스 재총선까지 불확실성이 커 환율은 변동성이 큰 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봤다.
물론 과거에는 환율 상승이 한국 경제에 악재는 아니었다. 고환율=수출 증가라는 공식이 성립됐기 때문이다. MB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펼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은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환율 상승이 민간소비와 설비투자에 타격을 입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22년간의 환율과 경제지표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결과, 환율이 1%(약 10원) 오를 경우 민간소비는 2041억원(-0.21%), 투자는 966억원(-0.49%) 줄었다.
더욱이 올해는 유럽 재정위기로 수출 시장이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환율 상승이 가계소비를 더욱 위축시켜 한국경제를 이중고에 빠뜨릴 가능성은 더 커진다. HSBC는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높아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계소비 증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율 오름세가 지속되지만 외환당국은 묘수가 없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환율의 속도 조절을 위해 정부가 개입했다”고 공식 언급했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는 이 같은 기조를 못마땅해 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최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한국이 원화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며 “한국의 시장 개입을 자제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