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M&A’는 기업 성장의 한 축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마다 M&A기업 정보를 얻기 위해 첩보전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건설사들이 줄줄이 매물로 나왔다.
당시 몸집을 불리려는 건설사와 건설업에 진출 하려는 대기업들이 인수전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과도한 욕심으로 실제 기업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하거나 무리하게 자금을 끌여들여 입찰에 나선 기업들이 부도위기에 내몰렸다.
이른바‘승자의 저주’다. 시행착오를 겪은 기업들은 이제 건설사 M&A를 극도로 꺼리고 있다. 옥석을 가리기가 먼저 라는 얘기다. 이러한 가운데 건설사들은 새 주인덕에 더 탄탄한 사업기반을 구축하기도, 빈 껍데기가 돼 다시 매물로 M&A시장에 나오기도 한다.
지난해 현대차 그룹에 인수됐던 현대건설은 철강, 자동차, 건설 등 3대 축을 키우겠다는 현대차 그룹의 경영목표에 따라 물량지원 등 든든한 측면지원을 받고 있다. 결과는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건설 올해 1분기 실적은 연결재무 기준으로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4% 상승한 2조 7056억원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1532억원으로 7.4% 증가했다.
건설 불황으로 건설사들의 마이너스 실적이 속출하고 있는 나온 값진 결실 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해외건설 수주실적이다. 지난해 현대건설 해외수주액은 47억달러로 다소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 부터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실제로 올 1분기 전체 수주 4조원 가운데 해외수주가 3조1000억원에 달했다. 올해 100억달러 목표는 물론 초과 달성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난해 현대차 그룹에 편입되면서 해외 신시장 개척을 통한 시장 다변화가 서서히 실적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는 “현대차 그룹이 보유한 전세계 190여개국에 걸친 광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물론 브랜드 파워, 해외 신인도 등을 현대건설이 적극 활용하면 해외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현대제철과 현대로템과의 시너지도 기대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 주인땜에 빈 껍데기된 대우건설 = 반면 대주주 때문에 우량회사가 부실화 된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건설 이다. 지난 2005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규모는 6조5000억원에 달했다. 자산관리공사가 보유했던 대우건설 지분 72.1%를 매각하는 대형 M&A였다.
대우건설은 2000년 이후 3년간 순손실을 기록한 적자기업이었다. 이런 대우건설이 2005년 말에는 자산규모 3조원, 순이익 3300억원의 우량기업으로 바뀌었다. 부채도 84.5%에 불과했다. 인수자들이 탐낼 만했다. 금호아시아나를 비롯, 두산, 유진, 삼환 및 프라임산업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금호아시아나는 금호산업을 비롯해 금호석유, 아시아나항공 등 계열사를 모두 끌어들였다. 경쟁자를 제치고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하면서 금호아시아나는 승자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인수자금이 문제였다. 대우건설 딜에 금호아시아나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인수자금은 2조9000억원에 불과했다. 계열사 현금에다 보유자산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했다. 나머지 3조5000억원은 금융권에서 차입했다. 이 돈을 차입하면서 재무적투자자(FI)에게 2009년말 대우건설 주가가 3만2000원을 밑돌 경우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사주기로 하는 풋백옵션을 약속했다. 이게 탈이났다.
당시 대우건설 주가가 1만2800원까지 떨어지면서 금호산업은 3조50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일시에 상환해야 했다. 결국 금호산업은 2009년 말 2조6000억원의 영업외 손실을 입으며 순손실도 3조3000억원까지 늘어났다. 금호산업은 자본잠식 상태로 떨어지면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래도 최대 피해자는 역시 대우건설이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대우건설의 서울역 대우빌딩은 물론 사업성이 양호한 개별택지와 부동산 등 알짜 우량 자산을 대부분 팔아 치웠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인수와 재매각 과정에서 3년만에 대우건설은 알짜 자산을 죄다 빼앗긴 사실상 빈 껍데기 회사로 전락하게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건설사 시공능력 평가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시공능력평가 1위를 달리던 대우건설이 2009년 현대건설에 1위 자리를 내주더니 급기야 지난해 업계 6위 까지 밀렸다. 이는 대부분 금호그룹 인수 휴유증으로 나타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후 그나마 산업은행에 품에 안긴 이후 금융과 건설분야 시너지로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미운오리 새끼된 극동· 진흥 = 승자의 저주로 그룹내 알짜배기 회사를 처분해야 하는 케이스도 있다. 지난 2007년 극동건설을 인수한 웅진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극동건설 인수 이후 건설업계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웅진그룹은 웅진코웨이라는 그룹 내 캐쉬카우를 시장에 내놔야 했다.
내부적으로는 극동건설을 시장에 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어차피 내놔봤자 부동산 경기 침체로 팔릴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알짜자산인 웅진코웨이를 내놨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극동건설 인수로 건설업계에 무임승차하려다가 오히려 그룹내 애물단지만 늘린 셈이 된 것이다.
지난 2008년 효성그룹이 인수한 진흥기업도 사정이 비슷하다. 당시 진흥기업에 4000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회생시키기는 커녕 지난해 5월 채권단과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 협약을 맺었다. 당시 효성그룹에는 효성건설이라는 작은 건설업체가 있었지만 토목 등에서 강세를 보이는 진흥을 인수, 외형 확대를 도모하다가 고배를 들었다. 역시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직격탄을 맞고 승자의 저주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대한전선 역시 남광토건을 2008년에 인수하는 등 건설·부동산 기업에 4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지만 시너지 효과는 고사하고 그룹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건설회사를 인수했다가 경영위기를 겪게 된 기업이 한 두곳이 아니다. 부동산경기 회복이 앞으로도 쉽지 안을 전망이어서 줄줄이 대기중인 건설매물도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