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없고 현실성 없는 보고서들이 넘쳐나니 문제는 문제입니다.”
개인투자자 A씨(32)는 지난 5월 증권사의 보고서를 믿고 한 의류업체의 주식을 사들인 후 속만 태우고 있다. 당시 3만원대를 형성했던 주가는 3개월만에 2만원대로 미끄러졌다. 7월 들어 주가가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몇 개의 증권사들이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조정했다. 하지만 주식 초보인 A씨는 ‘중립’ 또는 ‘보유’라는 모호한 의견이 곧 매도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없었다.
증권사 보고서에서 ‘매도’의견이 사라지고 있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27일까지 증권사들이 발행한 총 1만 7721건의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을 낸 보고서는 단 1건에 불과했다. 비중축소를 낸 보고서 역시 1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증권사 보고서 중 매도의견을 제시한 보고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개인투자자들에게 ‘매도’의견이 사라진 증권사 보고서는 더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때문에 개미들은 주식투자자 모임 인터넷 카페 등에서 나름의 보고서 해석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한 개인투자자는 “증권사 보고서를 자주 체크하되 비판적으로 읽는 방법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며 “기대실적의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계약에 따른 장기적 매출증가가 차질없이 이뤄질지 등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적지 않은 개인투자자들이 목표주가와 투자의견만 보고 바로 매수에 들어가는 묻지마 투자 경향이 있다”며 “증권사 보고서의 경우 대부분이 매수 일색이어서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보고서에서 ‘매도’의견이 사라진 것은 리서치센터의 주고객이 운용사, 연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이기 때문이다. 법인영업 쪽에서 종목을 추천하거나 리서치자료 등을 제공하며 영업을 하는데, 갑의 위치에 있는 기관의 보유종목에 대해 매도의견을 제시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금융소비자연맹 조남희 대표는 “증권사들이 냉철한 기준에 따라 기업을 분석하고 이에 합당한 투자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며 “그러나 눈앞의 영업이익에 치중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시장을 왜곡시키고 개인투자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증권사측은 기관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쉽사리 매도 보고서를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매도 보고서를 쓸 경우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서 반발이 오지만,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쪽은 오히려 개인투자자”라며 “최근 모 증권사 연구원이 매도의견 보고서를 냈다가 개인투자자들의 항의 전화에 시달리다 결국 며칠간 휴가를 다녀온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같은 금융선진국의 경우 매도 의견 보고서를 내도 큰 저항이 없지만 국내의 경우 금융투자 역사가 짧아 상대적으로 투자문화 성숙도가 낮은 편”이라며 “투자자들의 반발을 피해 매수 의견을 ‘보유’로 바꾼다던지 목표주가를 내리는 방법을 통해 매도의견을 보고서에 간접적으로 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