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뒷감당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사회관계망으로 얽힌 한 개인의 언행은 결국 소속 단체와 기업 등이 고스란히 파편을 맞아야 한다. 특히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의 부적절한 언행은 때때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지 않았던가.
김중겸 한국전력 사장의 최근 한 달 동안의 언행은 이 같은 속담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지난달 29일 한국전력거래소와 비용평가위원들을 상대로 4조원대 손해배상청구소송 방침을 밝힐 때만 해도 김 사장의 결의는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목에 칼이 들어와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기요금 현실화는 역대 한전 사장들 모두가 외쳤던, 한전의 오랜 숙원(?)이었다. 적자에서 탈출할 수 있는 대안이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온전히 해결을 하지 못했다. 때문에 김 사장의 소송방침에 한전 임직원들은 한편으로는 설마설마 하면서도 기대감이 컸다.
지난 17일 김 사장 취임 1주년을 전후로 소송이 유야무야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감독기관인 지식경제부의 경고성 공문과 정부 안팎의 경질설 등이 보도되면서 꼬리를 내린 것이다. 책상을 치우겠다는 엄포에 놀란 사실상 백기투항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일부 김 사장에게 우호적인 반응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보장된 임기를 놓고 공공기관 CEO를 겁박하는 정부의 대응이 심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김 사장을 한 기업의 CEO로만 바라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김 사장을 보기 전에 김 사장이 몸담고 있는 한전의 위상과 역할을 먼저 봐야 한다.
한전은 공공기관이다.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설립과 운영도 정부의 투자와 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국민 세금을 밑거름으로 하고 있는 회사다. 당연히 한전의 존재 이유도 한전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이익이 먼저다.
민간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김 사장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이다. 오랜 기간 현대건설에서 근무했던 김 사장은 성과주의를 강조하는 경영환경에서 탁월한 감각과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자였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라면 감독기관을 향해 소송이라는 칼도 빼들 수 있는 저돌적인 경영스타일은 오히려 강점이었다.
그러나 김 사장은 전기요금을 올려 회사의 수익을 개선하겠다는, 다시 말하면 물가안정이라는 정부의 방침을 거슬러 국민의 지갑을 노리다 감독기관의 제지를 받고 주저앉은 아주 모양새 사나운 꼴이 돼버렸다.
김 사장과 같은 오버액션을 막기 위해서는 향후 공공기관 CEO 자격심사에서 후보자의 경영능력과 함께 공익철학도 엄격히 따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