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피를 흘리던 송씨는 한동안 고성과 욕설을 쏟아내며 응급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이어 새벽 3시. 행려환자 A씨가 응급실로 황급히 이송돼왔다. A씨는 의식은 있었지만 술이 취했는지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했다. 응급실 관계자는 “추워서 자고 싶어 온 것”이라고 일축하고 이송 경찰관에게 다시 데려갈 것을 종용했다.
A씨를 데려 온 경찰관은 “초겨울 날씨에 이 사람들은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는데 대체 어디로 데려가라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렇게 돌려보낼 거면 ‘주취자 응급의료 원스톱센터’가 왜 있나”라고 토로했다.
지난 1일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직접 둘러 본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은 노숙자와 주취자, 행려자 등의 환자가 북적거리면서 말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국립중앙의료원 명성은 어디로?=과거 국립중앙의료원(옛 국립의료원)은 환자들이 가고 싶어 하는 병원 1순위에 꼽힐 정도로 시민들의 선호도가 으뜸이었다. 직원들과 친분이 있어야 입원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그 위상이 대단했다.
1958년 6·25전쟁 이후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3국과 함께 의료원을 한 뒤 1968년 운영권이 한국 정부로 이양되기까지 의료원은 동양 최고 수준의 장비와 시설, 선진화된 의료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의료시혜를 크게 확대해 취약계층도 큰 부담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정부의 정책기조가 공공의료가 아닌 민간의료에 치중하면서 쇠락의 길을 맞았다. 소극적으로 재정 지원을 하는 탓에 최고 수준의 병원은 서민 병원으로 전락한 것.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은 300억원의 국비를 지원받고 있지만 인건비를 제외하면 말 그대로 ‘공공성’이라는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정부의 방관 탓에 의료시설 역시 낙후돼 시민들이 이용은 사라진 채 노숙자와 행려자, 주취자 등이 주로 찾는 시설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정부, 골칫덩이 공공의료기관 법인화=정부는 ‘효율적 운용과 경쟁력’을 이유로 적자재정에 시달리던 국립중앙의료원을 2010년 4월 특수법인화 했다. 법인화 된 지 올해로 3년째지만 ‘공공성 상실’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병원과의 협진으로 우수한 의사 인력을 확보하고 환자수도 늘고 있지만 낙후된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진료가 꼭 필요한 빈곤 계층이 오히려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건강 양극화도 부추기고 있다.
현재 중구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병원 건물은 1958년 건립 이후 구조 변경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노후된 시설을 현대화하기 위해 서초구 원지동 일대로 신축·이전을 추진했으나 서울시와 협의가 지연되고 있다. 법인화 되면서 50%의 직원이 새로 채워졌고 맨 파워가 떨어지고 업무의 연속성이 저하됐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수익성 추구에만 앞장서는 국립중앙의료원이 도마위에 올랐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올해 모든 진료과에서 1인당 진료비가 상승했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진료비 비중도 2010년 16.9%(95억원)에서 2011년 17.4%(112억원)로 증가했다.
법인화 이후 의료서비스가 향상돼 전체 공공의료가 발전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정부에서는 재정자립을 요구하고 있고 외부에서는 공공성 확대를 요구해 동전의 양면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있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 재정자립도를 요구하며 소극적으로 지원해주다보니 진료 수입을 올릴 수밖에 없다. 공공성을 확대하면 인건비 부족에 시달릴 수 있는데 그 부분을 메워 준다면 왜 공공성 확대 안 하겠나”라면서 “국립중앙의료원이 공공성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행정 지원 인력을 늘리는 등 비용만 있는 부서가 늘어나야 하는데 이 비용을 누가 감당해 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권용진 서울의대 의료정책실 교수는 “국가주도형 개혁을 해온 우리나라에서 공공 개혁 자체가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국립중앙의료원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적자가 나는 사업에 대한 운영비 보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