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셜텍 안건준 대표의 창업기는 그야말로 도전과 결심의 연속이었다. 안 대표는 창업 전 삼성전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었다. 잘 나가는 대기업의 연구원직을 뒤로 하고 벤처기업으로 발 걸음을 돌린 것은 그의 첫 번째 도전이었다.
안 대표는 삼성전자 연구원 시절 때부터 이미 특허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 특허출원도 많이 했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직원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할 기술을 찾는 능동적인 직원이었다. 이 같은 열정은 삼성전자 재직시절 약 50번의 일본 출장으로 연결됐으며, 1년 반 동안의 변리사 공부 도전으로 이어졌다. 기술과 이론을 겸비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기회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삼성전자에서의 당시 경험은 지금 크루셜텍을 이끌 수 있는 원동력으로 빛을 발휘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나온 안 대표는 벤처기업 럭스텍에서 약 4년 동안 최고기술경영자(CTO)직을 맡았다. CTO에 재직하면서 광학 기술자로 이름을 떨쳐가던 중 안 대표는 또 한번의 도전을 해야하는 상황에 맞딱드린다. 해외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게된 것이다. 안 대표는 당시 제안이 온 몸 값이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기술력을 높게 평가한 값어치였다.
그러나 안 대표는 크루셜텍을 창업하는 길을 택한다. 자신을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했던 광학 기술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한다는 결심이 계기가 됐다.
안 대표는 정보기술(IT)의 핵심 부분인 나노 광소재 플랜트라인 사업을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했다. 당시 IT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터라 크루셜텍은 창업 초기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자신만만했던 안 대표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쳐왔다. IT버블이 붕괴되면서 광학 분야에 대한 시장관심이 줄어든 것이다.
안 대표는 세 번째 도전을 감행한다. 그는 광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입력장치 개발에 나섰다. 수 년의 연구·개발 끝에 ‘옵티컬 트랙패드(OTP)’ 분야 정상에 섰다. 그리고 지금 삼성·LG·팬택·노키아·샤프·카시오·교세라·블랙베리·소니까지 글로벌 기업의 1차 벤더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안 대표는 회사의 외형 성장을 꿈꾸면서 동시에 내적 성장, 즉 ‘굿 컴퍼니’를 꿈꾸고 있다. 그는 “우리 회사와 연결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바라보고 인정하는 곳, 사장·임직원·바이어·주주 모두가 보더라도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며 “누구나 인정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그 꿈을 이루면 빅 컴퍼니도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안 대표는 독자적인 아이템을 추구하며 성장의 길목에 서있는 중소기업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기술이 있다고 해도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영역을 갖춰야합니다. 그게 특허일 수 있고 전략일 수 있습니다. 기술개발 위주의 운영보다 전략적 사고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