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새벽길로 출근해, 어두운 저녁길로 퇴근하는 게 우리의 하루다. 바짝 말라비틀어진, 그래서 삭막하기까지 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밤하늘 한번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며 산다. 분주한 삶이 대부분인 탓이다.
겨울, 특히 차가운 겨울 밤 하늘은 다른 계절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를 담고 있다. 검푸른 어둠이 조금씩 스며드는 겨울밤은 마냥 싸늘하기만 한 겨울 낮과 사뭇 다르다. 고즈넉하게 반짝이는, 이름 모를 작은 별들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때다.
자연을 체감하고 대화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차분함과 여유로움도 있다. 답답한 마음을 시원스레 열어보면 머리와 가슴도 차가운 냉기에 쉬 정화되기도 한다.
이렇게 나 스스로 자연과 조금씩 하나가 되면서 겨울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여기에는 여름과 가을에 느낄 수 없었던 ‘치유의 시간’이 담겨 있다. 이제껏 몰랐던 ‘삶의 활력소’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겨울 밤하늘을 차분히 바라볼 때면 잊었던 동심의 시간을 잠시 회고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잠시나마 옛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은 겨울밤이 우리에게만 허락하는 소중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절마다 그때그때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산다. 새로운 계절이 우리 곁에 왔음을 망각하기도 하고, 계절이 우리 곁을 쉽게 지나치는 탓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추위에 가슴을 웅크리며 살다보면 어느새 봄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조금씩 파릇한 봄기운을 느끼기도 전에 개나리가 찾아오고, 목련이 피고 진다. 코끝을 자극하는 아카시아와 라일락의 향취에 젖다보면 금세 계절은 여름으로 달려갈 때가 많다.
한여름 뙤약볕에 지칠 때 즈음이면 태풍에 만신창이가 되기도 한다. 장마가 끝나면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오곤 한다. 안타깝게도 드높은 파스텔 톤의 청명한 가을 하늘은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어느새 계절은 겨울로 향한다.
이렇듯 큰 걸음으로 우리 곁을 지나는 계절 가운데 겨울은 유난히 길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향긋하고 따뜻한 차 내음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도 긴 계절이 주는 여유 때문이다.
차 한 잔 앞에 놓고 지난 시간을 회고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겨울의 한복판에 성큼 들어서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계절을 통해 인생을 배웠고 삶의 온화함을 느꼈다. 겨울은 그렇게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온다. 지난해 겨울, 그리고 지금까지의 겨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