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정부조직 개편안의 국회 처리가 지연되면서 국정은 올스톱 상태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전제로 내정된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산자원부, 해양수산부 장관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어 온전한 박근혜 정부는 3월 중순이 돼야 가능할 전망이다.
가장 우려되는 건 저성장이 지속되며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GH노믹스’가 가동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GH노믹스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 위주의 신 성장인데, 이를 주도할 부처인 재정부와 미래부가 출범 조차 못하고 있다.
통상부문을 가져오게 될 산업부의 출범이 늦어지면서 각국과의 FTA 협상이나 이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당장 3월에 있을 한중 FTA는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여야는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어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여야는 27일 오전에도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물밑 협상을 벌였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담당하던 IPTV(인터넷TV), 종합유선방송국(SO), 일반 채널사업자(PP),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정책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여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방송통신 융합을 기반으로 한 ICT(정보통신기술) 산업 육성을 위해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을, 민주통합당은 방송 공공성과 공정성을 내세워 방송 정책의 방통위 존치를 요구 중이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정치적인 의구심이 남아있다면 조금 더 보완된 장치를 두는 한이 있더라도 방송과 통신을 분리할 수 없다”면서 “방송과 통신을 분리하라는 것은 본질에 반하기 때문에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지 말라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반면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의 몽니 때문에 정부조직법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며 “민주당은 양보할 수 있는 것은 다 양보했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여야가 별다른 출구전략을 내놓지 못한 채 정치력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조직법 개편안 처리는 2월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조차도 “여야 지도부의 지도력 부족으로 본다”며 “저도 여당 지도부 구성원의 한사람이지만 국민들을 볼 때 면목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조직법 개정을 둘러싼 현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당선 이후 “앞으로 국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이 돼 야당과 여당이 힘을 합쳐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인수위가 만든 조직법을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자세에선 국회를 존중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조직법 처리가 난항을 거듭하는 데는 박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며 “정부조직법은 대통령직인수위가 만든 초안으로 국회에서 협상하라고 만들어놓은 것인데, 국회가 대통령의 의중을 옮기는데 그친다면 민주주의는 요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