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글재주가 좀 있었으면” “학교성적과 어학점수가 조금만 더 높아야 하는데” “한 살이라도 나이가 어렸으면” 취업 카페 게시판을 찾으면 흔히 볼 수 있는 취업준비생들의 절규다. 공채 시즌 주요기업들이 서류 합격자를 발표할 때마다 게시판은 이처럼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를 분석하는 글로 가득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부족하다며 다시 공부에 집중하고 다른 이들은 서류만 통과하면 면접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다양한 능력과 특기를 가진 청년들이 획일화된 시험과 제도에 매몰되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과 자신감으로 세상에 도전해야 할 청년들이 다른 이들과 똑같은 잣대로 비교당하며 자조감에 빠져야 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신입구직자 4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평소 구직활동에서 우울함을 느끼는가란 질문에 ‘매우 그렇다’(54.3%)와 ‘다소 그렇다’(37.1%)가 전체의 91.4%(426명)에 육박했다. 과열된 경쟁으로 ‘토익 부정대리시험’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행제도를 바꾸기 위해 고심을 거듭해 왔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핵심직무역량 평가모델’은 이 같은 고심의 결과물이다. 천편일률적인 ‘스펙’보다 실제 직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살필 수 있도록 평가방식을 개선한 것이다.
기업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13일 인크루트가 신입사원 채용 경험이 있는 기업 104곳의 인사담당자에게 ‘스펙이 신입사원 채용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묻자, 71.2%가 스펙은 ‘지원자격만 넘기면 더 높더라도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객관화된 점수의 비중을 점차 줄이고 블라인드 면접, 팀 프로젝트 등 프로그램을 통해 심층적인 역량 평가에 주력하는 추세다. 학원이나 단기 학습으로 얻은 지식을 테스트하기보다 지원하는 업무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왔는지를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탈 스펙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임민욱 팀장은 “지금 나오는 프로그램들이 몇 년 후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인재에 부합하는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기업들은 스펙화하기 힘든 부분에 대해서 똑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다양한 각도로 인재를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용의 주체가 되는 취업준비생들에게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미석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직업선택 기준이 고용안정성에 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진로탐색 기회를 제약당하고 편향된 진로의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직업관을 정립해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