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서울 종로의 외환은행 지점. 기자가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에 관심을 나타내자 창구직원은 금리나 혜택이 좋다면서 가입을 권했다. 최근 재형저축이 인기몰이 중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출시 일주일 만에 가입 계좌 수 70만좌를 돌파한 재형저축은 조만간 100만좌 개설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열기가 한풀 꺾였다. 재형저축 가입을 고민하는 투자자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재형저축이 18년 만에 부활한 지난 6일. 예상대로 시중은행에는 재형저축에 관한 문의가 쇄도했다. 전화 문의만 오가던 오전과 달리 점심시간부턴 지점 풍경이 확 바뀌었다. 회사원들이 대거 몰리면서 지점은 북새통으로 변했다. 재형저축 상담창구를 별도로 만들 만큼 상담자가 몰린 곳도 있다. 7년 이상 유지해야 하는 부담에도 불구, 4%대 중반의 높은 금리가 매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재형저축의 가장 큰 장점은 우대금리를 포함해 최고 4.6%의 높은 금리 수준이다. 세제 혜택도 매력이다. 재형저축은 14%에 달하는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처럼 재형저축이 기존 예·적금 상품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비과세인 까닭에 근로자들의 관심이 클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 여기에 은행권의 과열 마케팅이 가세하면서 바람몰이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당초 은행권에서는 연봉 5000만원 이하 급여소득자 620만명,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 자영업자 280만명 등 최대 900만명이 재형저축에 가입할 것으로 기대했다. 은행권은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대출자금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역마진 우려에도 불구, 출혈경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감독당국이 개입하고 나서야 과열마케팅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은행권의 기대나 감독당국의 우려와 달리 재형저축 바람은 최근 들어 한풀 꺾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판매 첫날 28만 건에 달했던 재형저축 신규개설 계좌 수는 10만 건 밑으로 급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재형저축 신규개설 계좌 수는 지난 15일 기준 93만좌로 집계됐다. 이는 재형저축에 대한 맹목적인 과신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다양한 재형저축 상품을 좀더 꼼꼼히 살펴보고 맞춤형 상품을 찾으려는 깐깐한 가입자들이 늘고 있다는 방증인 셈. 즉 관망 심리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재형저축의 가장 큰 경쟁력인 금리는 최초 3년간 기본 금리(고정 금리), 3년이 지나면 변동 금리가 적용된다. 현재 최고 4.6%인 금리는 3년 후 기준금리에 따라 3% 이하로 낮아질 수도 있다. 초저금리 상황에서의 차별적 경쟁력인 금리차에 따른 실제 재산형성 기여도가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최대 0.3%의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서는 급여통장 개설이나 재형저축 자동이체 신청, 주택청약저축 가입, 일정 규모의 신용카드 사용 실적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비과세 혜택도 마찬가지다. 재형저축은 7년 이상 유지해야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중도해지 시에는 이 모든 혜택이 사라지거나 축소된다. 7년 이내에 해지하면 비과세 혜택이 없고 3년 이내에 해지하면 정기적금처럼 1.0% 내외의 금리가 적용된다. 3년 이상 유지 시 비과세 혜택은 없어도 우대금리를 제외한 기본금리는 적용받을 수 있다.
재형저축은 은행권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 대신증권은 만기 1년 이상 정기예금 금리가 3% 초반인 점을 감안할 때 기본금리 약 4.1~4.3%, 우대금리 감안 시 최고 4.5~4.6%인 재형저축은 역마진이 우려될 정도로 상당한 고금리라고 지적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행 금리 수준은 역마진 구조가 불가피하지만 3년 뒤면 금리를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시중금리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며 “수익성을 외면한 지나친 고금리는 결국 금융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은행권은 재형저축 계좌 수 확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역마진 우려보단 수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중도해지율이 높아 고금리 제공에 따른 부담이 크지 않은 데다 월급 계좌 유치나 신용카드 사용 등에서 부가 수익을 챙길 수 있어서다.
실제 재형저축과 같은 장기 절세상품의 경우 중도해지율이 높다. 시중은행들의 5~10년 만기 비과세 상품 해지율은 45~60%에 달한다. 비과세에 소득공제 혜택까지 있는 장기주택마련저축의 경우도 비과세 기준인 7년 유지 비율이 30% 수준이다. 3년 후 변동금리에다 높은 해지율을 감안할 때 은행들이 실제 손해 볼 일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