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들이 이사회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업들도 능력 있는 사외이사를 뽑고 이사회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원론엔 동의한다.
하지만 통상 사외이사는 경영진과 친분이 있거나 각종 인연으로 맺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새로운 인물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올 주총 시즌에서도 이런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기업들은 화제성 인물을 뽑거나 최초의 사외이사라는 점을 각인시켜 기업 홍보 효과도 얻고 이사회를 활성화시키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삼성전자 최초의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된 주인공은 김은미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국제학과 교수)이다.
김 교수는 이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7년 남캘리포니아대 교수, 1994년 하버드대 방문교수를 거쳐 현재 이대 국제대학원 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국내 30대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는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오너들의 경영 참여로 인해 사내이사의 경우 여성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지만 사외이사만큼은 ‘금녀의 벽’으로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거수기’라고 비아냥대던 사외이사제도에도 큰 변화를 줬다. 법적 지위를 갖는 이사회 산하 위원회로 ‘CSR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은 물론 위원 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사내이사를 참여시키지 않은 까닭은 독립적 지위가 보장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경륜을 최대한 활용해 사회공헌 사업에 나서겠다는 의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CSR 위원회 설치와 함께 사외이사들은 단순히 이사회에 참석해 표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 내부에서 사회공헌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게 된다”면서 “각 사외이사가 별도의 연구회를 운영하며 CSR 사업을 위한 연구활동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예인부터 문학계 인물까지 = 유명 연예인이 사외이사로 몸담고 있는 곳도 있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사외이사 한 명은 삼성카드가 추천한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다. 그는 비언어 퍼포먼스 ‘난타’ 제작자로 유명하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송 대표를 사외이사로 낙점했다.
아역배우 출신인 송 대표는 오랜 연기자 생활을 바탕으로 1997년 10월 난타를 선보여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삼성카드는 다양한 문화 마케팅을 활용하는 데 있어 송 대표의 조언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작곡가인 김형석씨도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로엔엔터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김형석씨는 호원대 실용음악과 전임 교수로, 김건모의 ‘첫인상’을 비롯해 박진영, 엄정화, 신승훈, 성시경, 임창정 등 유명 가수의 노래를 다수 작곡한 인물로 유명하다.
문화계 거장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경우도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베스트셀러로 대중에게 알려진 김난도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는 지난해 제일모직 사외이사로 선임돼 활동하고 있다.
농심 역시 지난 2011년 중견 소설가 김주성씨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바 있다. 김씨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시절인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특히 기업의 사사 편찬과 편집 분야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는 1996년 농심의 ‘30주년 사사(社史)’를 편찬하며 농심과 인연을 맺은 뒤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현재까지 끈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