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숙이 누구지?”
지난 2월 5년 만에 부활하는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윤진숙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이 지명되자 해양수산업계와 정관계에서 나온 소리다. 그만큼 그는 박근혜 정부의 장관 임명자 중 단연 ‘깜짝 인사’로 평가됐다.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 프로필조차 나와 있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미혼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큰 공통점이나 친분이 없다. 지방대 출신에 무명에 가까운 연구자 출신인 윤 장관이 새 정부의 첫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양연구본부장 출신인 윤 장관은 해양수산 분야 정책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북에서 피란 온 부모 밑에서 자란 윤 후보자는 부산여고와 부산여대(현 신라대) 지리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경희대에서 지리학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입사한 이래 16년여간 해양 연구의 외길을 걸어왔다.
국무총리실 물관리 대책위원, 국토해양부 정책자문위원, 여수엑스포 비상임재단이사장, 해양수산부 정책평가위원과 한국수로학회 부회장 등을 거치며 해수부에서 다룰 업무를 이미 대부분 경험했다. 이전 정부에서도 해양수산전문가로 활동해 온 만큼 해양정책 수립에는 실무와 이론을 아우르는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여성으로서 조직 장악력과 대외협력 능력이 의문스럽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윤 장관은 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장 시절 나름의 업무 능력과 조직 장악력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국제해양법재판소, 유엔환경계획(UNEP) 동아시아해양조정기구 등 해양수산 분야 대외 협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연안관리법, 해양환경관리법, 해양수산발전기본법 등 우리나라 해양수산 정책 수립의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미 해양수산 관료들과 자주 소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토부 등 해수부로 옮길 공무원들 사이에서 윤 장관 내정 직후 산하기관의 본부장, 거기에 학자 출신이어서 부처 장악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새 정부의 장·차관급 인사가 줄줄이 낙마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평소 엄격한 공사 구분을 윤 장관의 장점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질 논란이 일어나 ‘몰라요 장관’이나 ‘까막 진숙’이라는 별명이 붙는 등 엄청난 수모를 당하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의 놀라운 신임에 힘입어 4월 17일 마침내 임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윤 장관 자신은 미처 보이지 못한 전문성을 살려 해수부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윤 장관은 평생 대학 강사와 KMI 연구원으로 검소하게 살아와 본인 소유의 부동산도 없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인사청문회 당시 윤 장관이 신고한 재산은 1억5484만원. 이 중 예금이 1억5243여만원이고 금융기관 채무는 667만원이다. 908만원 상당의 2006년식 쏘나타 자동차도 재산으로 기재됐다.
◇해수부 청사 세종시 설치, 외연 확장시킨 주역
지난 2월 17일 정부의 3차 내각 인선 발표 직후 윤 장관이 부산 출신이라는 이유로 해수부 청사의 입지로 부산이 유력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강하게 제기됐다. 꾸준히 해수부 유치를 추진했던 부산시에서도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정부가 해수부 청사 입주지역을 세종시로 확장하면서 부산시는 고배를 마시게 됐다. 그간 해수부의 청사 위치는 논란거리가 됐다. 이명박 정부의 해수부 해체 전 부산에 해수부가 있었던 데다 바다가 없는 내륙인 세종시에 해수부 청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윤 장관은 언론을 통해 “해수부만 따로 떨어져 있으면 업무가 가능하겠느냐”며 해수부 청사의 입주지 논란을 누그러뜨렸다. 윤 장관은 해수부 청사가 부산으로 갈 경우 업무효율성이 떨어지고 우수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박 대통령에게 세종시 설치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해양부,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의 분리를 앞두고 불안해하던 공무원들에게서 환영의 목소리가 나온 건 당연한 일.
애초 기존과 같은 2실로 구상되던 해수부를 기획조정실·해양정책실·수산정책실 등 3실, 해운물류국·항만국·해사안전국 등 3국 체제로 출범시킨 것이 윤 장관이라는 사실도 전해지면서 해수부 공무원들의 여론이 급속히 우호적으로 돌아섰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