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이 투자정보와 연관된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다. 정보는 해당 기업의 주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어 모든 투자자에게 공정하게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처럼 상장기업들은 공시를 통해 회사의 정보 등을 모든 투자자와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를 투자자들보다 먼저 알고 이용하려는 대주주 및 기관투자자들의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악재를 공시하기 전 미리 알고 손실을 피하는가 하면 회사의 주가가 급등하는 틈을 타 미리 보유지분을 팔아 막대한 부를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테마주가 들썩거리자 보유지분을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는가 하면 법정관리를 앞두고 기업어음(CP)을 대량 발행해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미래산업 창업주인 정문술 전 회장은 주가가 급등하자 회사 지분 7.49%를 전량 매각해 버렸다. 정 전 회장은 벤처업계의 대부로 불렸던 인물이다.
대표이사가 과거 안랩 임원이란 사실만으로 안철수 관련주로 편입된 써니전자는 최대주주 부자가 올 초부터 주가가 꾸준히 오른 틈을 타 끊임없이 지분을 처분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최대주주가 아예 아들로 변경됐다. 금융감독원은 이들이 지분 처분으로 얻은 차익만 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은 검찰 수사에서 회사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탈세까지 일삼은 비리가 드러났다.
대주주 및 내부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는 행태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공정거래 사건에서 미공개 정보 이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2005년 35.8%에서 2006년 42.2%, 2007년 47.1%, 2008년 50.0%, 2010년 52.4%에 달했고 2011년과 2012년 각각 63.6%를 기록했다.
문제는 회사 임직원과 주요 주주, 회계법인 같은 대리인 등 내부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뒷돈을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망 기업과의 인수·합병을 비롯해 신기술 발명, 신제품 출시, 신사업 진출 같은 호재성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매매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 내부자 거래 유형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작전세력의 시세 조종은 대부분 작전이 끝난 뒤에야 밝혀지는 일이 많다”며 “시세 조종이나 부정거래 혐의가 있는 업체를 내부 조사만 할 게 아니라 공시를 통해 시장 참여자들에게 알리는 등 작전세력으로부터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는 보다 치밀한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겉과 속이 다른 기관투자자 =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또 다른 손인 기관투자자들의 정보이용 행태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증권사들은 고객들에게는 “주식을 사라”고 권하면서 뒤로는 주식을 내다팔기도 한다.
증권사들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뒤 정작 자신들은 주식을 팔아치우는 겉과 속이 다른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증권사들이 순매도한 코스피 20개 종목에 대한 증권사들의 투자의견 중 ‘매도’도 단 1건도 없었다. 증권사들이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도한 종목은 SK텔레콤, KT, SK하이닉스, 한국전력, NHN 등의 순으로 많았다.
같은 기간 증권사들은 이들 종목에 대해 1970건의 분석보고서를 냈지만 투자자에게 해당 종목을 매도하라고 제시한 것은 1건도 없었다. 오히려 주식을 사들이라는 ‘매수’ 의견이 1920건으로 97.5%를 차지했다. ‘중립’ 또는 ‘투자의견 없음(Not Rated)’은 50건으로 2.5%였다.
특히 개별종목의 경우 전반적 장세 전망과 달리 투자자들에게 직접적 피해를 준다는 것과 증권사들의 이중적 매매 행태는 투자자들의 불신을 부르고 결국 증시기반을 악화시킨다는 점이 문제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 영업직원과 리서치센터 간 정보교류 차단장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지난해 불거진 애널리스트 투자 의견 사전유출 등을 비롯해 다양한 보고서 등이 개인투자자들에게 어떠한 피해를 줬는지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직원들 역시 미공개 기업 공시 정보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해 유진투자증권 영업이사는 한국거래소 직원으로부터 사전에 전달받은 기업 공시를 이용해 수십억원대 시세차익을 남겨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