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많은 미술품을 보유하게 된 것은 1950년대 정부의 미술장려책 때문이다. 6·25 전쟁 이후 길거리에 나앉는 화가들이 급증하자 정부는 한국은행,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미술품을 사들이도록 권유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한국은행이 모은 미술품은 한국화 625점, 서양화 396점, 서예 225점, 조각품 46점 등 총 1300여점에 이른다. 평가액은 58억여원이다. 한국 미술시장이 4000억원(2011년 기준)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은행의 이 같은 뒷받침도 한몫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매입한 미술품은 한국은행만의 것이 된 사례가 허다하다. 구매한 상당수 작품이 본점·지역본부의 장식용으로 쓰이거나 창고에 보관돼 있다. 외부인들을 위한 전시회는 일 년에 2번 정도로 한국은행 본점의 화폐박물관 일부 공간에 수십 점만을 공개하는 정도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관계자는 “주로 정부의 요청이나 미술시장 수급 조절을 위해 산 것이기 때문에 전시하기에는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 많다”며 “전시가 가능한 작품이 한정돼 여러 번의 전시회를 열기 힘들었다”고 해명했다.
미술계 지원이라는 목적은 긍정적이나 국내 미술품 시장이 상당히 성장한 상황에서 막연히 작가들을 도와주기 위해 활용하지도 못할 작품을 샀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은행의 미술품 구매는 어디까지나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12일 창립 63주년을 기념해 신진작가 공모전을 개최, 새로이 작품을 구입하겠다고 한다. 한국은행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미술품 구매 예산 및 절차를 공개하고 활용도도 높여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위축된 미술시장 지원 취지는 좋지만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미술시장 수급조절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