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유동성 위기설 속 책임론 부각
오후 기업설명회선 "재무구조 개선" 강조
해외 면세점ㆍ케미칼 저수익 자산 등 매각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결국 칼을 꺼내들었다. 롯데 계열사 CEO의 36%를 교체하고 전체 임원 13% 감축하는 역대급 규모의 임원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인사 발표 직후에는 기관투자자 대상 기업 설명회(IR)를 열고 해외 부실 면세점 철수를 검토하는 등 고강도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롯데는 28일 롯데지주 포함 37개 계열사 이사회를 열고 21명의 CEO를 교체하는 2025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그룹 위기설을 불러온 화학군 계열사 대표 13명 중 10명이 교체됐고 면세점 등 호텔롯데 3사 수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미래성장실장은 부사장으로 승진해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됐다. 롯데 측은 "경영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성과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묻는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의 역대급 쇄신 인사는 최근 불거진 ‘유동성 위기설’과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은 근거 없는 루머였지만, 시장이 크게 반응했다. 증시에선 롯데 계열사 주가가 급락했고 채권 시장에선 회사채 금리가 뛰었다. 과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한 롯데케미칼, 롯데면세점 등이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기업 재무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투자자들의 우려에 시장이 반응한 것이다. 이에 결국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칼을 빼들었다. 임원 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쇄신과 혁신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한편 인사발표 직후인 이날 오후 롯데그룹은 여의도 교직원공제회에서 기관투자자 대상 기업 설명회(IR)를 개최하고 최근 불거진 재무리스크에 대한 각 계열사별 개선 방안을 밝히기도 했다.
우선 회사채 위기가 불거진 롯데케미칼은 저수익 자산 매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실제 여수·대산 공장은 이미 원가 절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내년 이후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 내 투자 집행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 과도한 투자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또 기초화학 비중을 2030년까지 30%(현 50%)로 줄일 계획이다. 2조450억 원 규모의 회사채는 6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은행 보증을 강화하기로 했다. 회사채를 사채권자집회 이후 법원 허가를 받아 내년 1월 14일까지 보증사채로 전환하는 내용이 골자다.
롯데건설은 부채를 1조원 감축해 올해 말 부채 비율을 187.7%로 낮춘다. 올해 말 현금성 자산은 1조3000억원, 차입금은 1조9000억원대를 각각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우발채무 규모를 올해 3조6600억원에서 내년 2조4700억원대로 줄인 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등으로 2조원 이하로 관리할 계획이다. 우발채무는 현재는 채무로 확정되지 않았으나 가까운 장래에 돌발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채무로 확정될 수 있는 특수채무를 뜻한다.
호텔 부문에서는 업황 회복이 느린 면세 부문부터 칼을 댄다. 점포 효율화를 위해 해외 부실 면세점 철수를 검토한다. 롯데면세점은 일본, 베트남, 호주 등 해외에서 시내면세점 4곳과 공항면세점 8곳을 운영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현재 현금성 자산 1조1000억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정비 절감을 위해 월드타워 내 호텔 영업 면적을 축소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유통ㆍ식품군 CEO들은 '경영 일관성'을 이유로 대부분 유임됐다. 그러나 이들의 어깨도 무겁기는 매한가지다. 업황 악화 속 재무구조 개선이 이들의 가장 큰 숙제다. 또 누적 적자 5000억 원이 넘는 이커머스(롯데온)도 흑자 전환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유동성 리스크 해소를 위해 롯데쇼핑 측은 15년 만에 7조6000억원 규모 보유 자산 재평가를 통해 부채비율을 대폭 낮춘다는 계획이다. 또한 누적 적자인 이커머스에 대해서는 "2026년을 기점으로 실적이 흑자로 돌아설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