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에서 벤처 1세대로 완벽 변신
정 고문은 193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원광대 종교철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군대에 입대한 후 행정병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제대와 동시에 중앙정보부에 5급 공무원으로 특채로 임명, 18년간 공직자로 살았다.
1980년 42세의 늦은 나이에 강제 해직된 후 한차례 사업 실패를 겪은 뒤 1983년 지인들과 함께 미래산업을 창업했다. 반도체 검사장비인 테스트 핸들러(Test Handler)와 칩 부착장비(Chip Mounter)를 국산화해 당시 2억 달러 이상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고 50% 이상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1991년에는 ‘장영실상’, 1992년에는 ‘산업기술개발동상’, 1994년에는 ‘5월의 중소기업인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미래산업을 반도체 제조장비 선두업체 반열에 올려놓는다.
1996년 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에 입성한 뒤 그는 늘 ‘최초’, ‘최고’의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상장 후 최단 기간 최고 주가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최초로 50분의 1 액면분할을 단행하고 한국 기업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도 진출했다.
특히 정 고문은 1990년대 말 미래산업을 통해 소프트포럼, 라이코스코리아, 사이버뱅크, 자바시스템 등 10여개의 벤처기업을 세우거나 출자하면서 명실공히 ‘벤처 대부’로 자리잡았다.‘신뢰와 자율’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직원들에게 경영권을 넘겼고 후학 양성을 위해 써 달라며 자신의 재산 중 300억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은퇴 후에는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과 카이스트 이사장을 역임하며 벤처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작전세력 의혹에 금융당국 검찰 긴급조치
그러나 투자자들의 뇌리에 새겨진 정 고문의 이미지는 테마주 ‘먹튀’다. 정 고문이 안철수 교수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미래산업은 대선 테마주로 묶였다. 이에 지난해 상반기 300원에 거래되던 주가가 선거바람을 타고 9월 2000원대까지 치솟았다. 평균 5000만주에 불과하던 하루 거래량이 1억~2억주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주가 행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 고문이 주가 1700원대에서 보유지분(2254만주)을 전량 처분한 것이다. 금액만 400억원에 달한다. 그의 부인 양분순씨도 갖고 있던 139만여주를 1900원대에 나란히 팔아치웠고 권순도 대표와 권국정 사외이사 등 주요 임원들도 지분 정리에 동참했다.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9월 13일 2075원을 기록하던 주가는 9월 27일 533원까지 주저앉으며 보름 만에 75%나 급락했다. 18대 대통령 선거일 직전인 12월 17일에는 268원까지 밀려났다.
큰 손실을 입은 개인투자자들의 원망이 쏟아졌다. 당시 한 증권사이트 게시판에는 “테마주에 손댄 내가 잘못이지”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부터 “평단(평균판매단가)이 2062원입니다. 저 지금 죽으러 갑니다”라는 극단적인 글까지 올라왔다. “정문술씨 참 대단하시네요. 존경합니다”라는 비아냥도 터져나왔다.
미래산업의 악몽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금융당국은 이달 초 미래산업에 주가 조작세력이 개입한 것을 확인하고 검찰에 긴급조치를 통보했다. 긴급조치는 긴급을 요하는 사안의 경우 증권선물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증권선물위원장이 직접 검찰에 통보해 수사에 나서도록 하는 조치다.
투자자 A씨는 최근 한 증권사이트 게시판에서 “지난해 갑작스런 지분 매도가 경영권 세습을 끊기 위함이라고 둘러대며 개미들을 투기꾼으로 내몰더니 결국 그도 작전에 불과했다”며 “개미들의 피눈물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검찰은 철저하게 사건의 전말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