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젊고 매력적인 남자이고 싶지요.”
할배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상쾌한 향기가 진동하는 화장품을 바르고 힙합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거리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근데 자세히 살펴보니 향수를 바르고 뮤직 플레이어를 착용한 게 아니다. 이들은 시세이도가 개발한 노인 특유의 체취를 상쾌한 향기로 바꿔주는 비누와 화장품을 바르고 파나소닉이 출시한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형 보청기를 착용한 평균 75세 일본 할배들이었다. 고령층 시장 공략을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들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사례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2050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69%로 세계 최고의 고령화 사회가 될 것을 대비해 많은 기업들이 실버산업을 겨냥해 신선한 제품들을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고령화 사회를 두려워하기 보단 오히려 신시장의 기회로 삼고 있다.
◇해외는 노인 천국 = 상대적으로 고령화 현상이 빨리 찾아온 일본은 수십년 전인 1980년 전후부터 실버산업을 개척한 나라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일본 기업들은 노인의 심리와 상황을 잘 파악한 맞춤형 제품 개발에 도가 텄다.
손힘이 부족한 노인들을 위해 미끄럼을 방지한 물결 모양의 난간, 넘어질 경우를 대비한 충격 흡수를 통한 골절 방지용 속옷, 돋보기가 부착된 쇼핑 카트 등은 노인들을 위한 섬세한 배려가 묻어난 제품들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신개념 서비스와 제품도 등장했다. NWIC은 배설물 자동처리 로봇을 개발했으며 택시업계에서는 쇼핑이나 병원 진찰 접수, 약 수령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물론 영원한 오빠이고 싶은 신세대 노인들을 위한 상품은 단연 인기를 끌고 있다. 파나소닉은 올해 실리콘 손가락으로 머리감기에서 말리기까지 다 해주는 헤어케어 로봇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속옷업체 트라이엄프인터내셔널은 60대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보정용 속옷을 출시했으며 붐스는 굽은 허리를 위한 고령자용 여성복을 개발했다.
유럽에서는 중소 핸드폰 제조업체들이 실버산업의 수혜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대기업들이 젊은 세대를 겨냥한 핸드폰 제작에 집중하는 사이 틈새시장인 실버산업에 눈을 돌린 것이다.
스웨덴 핸드폰 제작업체 도로(Doro)는 △큰 자판과 화면 △문자와 메일 등의 주요 기본 기능 △가벼운 무게와 높은 가독성 등을 모두 충족시키는 실버 맞춤형 핸드폰 제작에 집중한 결과 100만개 판매를 돌파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노인들은 똑똑해 = 국내 기업들도 실버산업을 IT(정보통신) 분야와 접목시킨 제품들을 개발하고 있다. 중장년층을 위한 실버산업서비스 특성상 의료, 헬스케어, 레저 등과 같은 실버산업이 IT와 접목될 경우 성장 가속도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우선 SK텔레콤은 서울대병원과 맞춤형 실버산업 건강관리 프로그램인 ‘헬스온’을 개발했다. 스마트폰에서 헬스온 앱을 내려받고 손목이나 허리에 측정기를 착용하면 개인의 운동량과 식사량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센서가 달린 등산복, 실시간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 음성 명령으로 집안일을 해주는 로봇 등은 IT와 접목된 첨단 제품들이다.
삼성전자 역시 실버세대를 위해 폴더형이지만 스마트폰 기능을 두루 갖춘 ‘삼성 갤럭시 골든’을 출시했다. 이는 아직 ‘피처폰(일반휴대폰)’을 고집하는 노년층과 값비싼 스마트폰 활용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는 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신개념 스마트폰이다. 외형은 뚜껑을 여닫는 피처폰과 유사하지만 UI는 스마트폰과 동일하되 좀 더 사용자 위주의 쉬운 형태를 택했다.
이외에도 상조사업(에스원), 교통약자 배려 서비스(현대차), 헬스케어(SK케미칼) 등 기업들은 실버산업 진출을 위해 끊임없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실버산업 시장은 IT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국내 실버산업에 대한 전망도 밝다”며 “단 실버산업 각 분야의 가치를 알아보기 위한 면밀한 사전 검토가 필수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