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현장을 가다]“큐~” 방송 사인에 스튜디오는 적막함…콜센터는 전쟁터

입력 2014-01-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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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홈쇼핑 250스튜디오

▲산업부 이다람 기자(오른쪽)가 지난달 19일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 롯데홈쇼핑 스튜디오에서 방송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장세영 기자 photothink@

사방이 조용해졌다. 쇼호스트가 카메라 위치를 확인하고 세트 가운데 섰다. 2013년 12월 19일 오전 9시 20분 ‘7일간의 크리스마스 선물-짐보리 레이저페그’ 편 생방송이 시작하는 순간이다.

호스트 앞에는 카메라가 있고, 카메라 너머에는 초단위 시계와 실시간 주문 현황이 뜬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1분 만에 100통이 넘는 전화가 왔다. 대기 고객은 60명. 김건우 쇼호스트는 프롬프터 하나 없이 즉석에서 “주문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롯데홈쇼핑 단독 기획인 짐보리 레이저페그는…”라는 설명을 쉴 새 없이 이어갔다. 1시간 전 스튜디오와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다.

롯데홈쇼핑 250스튜디오는 아침 8시부터 고성이 가득했다.

◇큐 사인 들어간 스튜디오, 꿈과 상품을 판다= “이거 치워.” “로고 오른쪽 살짝만 올려주세요.” “조금 더 내려.” “세계 최초 맞지?.” “불 켜야 더 예뻐 보여.” “자막 확인하고 136번 넣고 키 켜고.” “3번 4번 합치고 추가 2번. 헤드셋!”

쏟아지는 주문대로 스태프 30명은 세트를 옮기고, 로고를 붙이고, 조명을 켜고, 오늘의 주인공인 장난감을 조립했다. 간단한 일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대로 인사를 나눌 틈도 없었다. 국내 최대 크기 스튜디오답게 조명만 280개가 넘는다. 350개가 한 세트인 장난감 블록을 하나하나 진열하다 보니 대학교 때 농활의 추억이 떠올랐고 허리도 아파왔다. 사람 사이를 가로지르는 말들은 어느새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방송을 알리는 초록색 온에어 사인이 들어온 후에는 정말 고요해진다. 순간 스튜디오에 쇼호스트와 카메라 감독 둘 뿐인 듯 착각할 정도다. 호스트는 카메라 너머의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제품을 설명하거나 직접 시연하기 시작한다.

곤충, 공룡, 퍼즐이 차례로 등장하는 동안 조명팀은 장난감 레이저가 동작하면 상품이 잘 보이도록 조명을 끄고, 호스트가 말할 때는 호스트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조명을 비추느라 바빴다.

같은 시각 편집실 스태프들은 중간중간 자료영상 21개와 CG화면 4개를 톱니바퀴처럼 끼워 넣고, 실시간 생방송을 보며 자막을 입힌다. 자료 화면이 나오는 20여초 동안 호스트가 이리저리 움직인 소품을 재빨리 원위치시켜 다음 모형을 만들 수 있도록 배열해야 하기 때문에 카메라 뒤는 분주함 그 자체다.

3번 서버에서 39초 분량의 아이들 시연 이미지가 오디오와 함께 방송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짐보리 방송은 끝났다. 이제 다음 생방송을 위해 세트를 원상복귀해야 한다. 모든 스태프가 달려들어 세트와 상품을 해체한다. 순식간이었다.

▲이다람 기자(왼쪽)가 롯데홈쇼핑 스마트컨택센터 교육장에서 전화상담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장세영 기자 photothink@

◇콜센터는 전쟁터… 하루 150여통 처리해야 베테랑= 콜센터로 이동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쉬운 일이겠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고객을 실시간으로 응대해야 하는 전화 업무도 생방송일 터. ‘블랙컨슈머’, ‘감정노동자의 고충’ 같은 단어가 뜬금없이 떠오르는 것을 누르며 롯데홈쇼핑 스마트컨택센터에 도착했다.

지난해 새롭게 문을 연 롯데홈쇼핑 스마트컨택센터는 서비스 향상 교육장을 갖추고 선배 상담원들의 노하우를 후배 직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오늘 배운 노하우는 고객의 말을 반복하는 것, 고객보다 먼저 전화를 끊지 않는 것이다.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통화 마지막까지 고객의 모든 요구사항을 내가 해결해 준다는 마음으로 통화하면 된다.

1시간여의 집중 교육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썼다. 앞에 놓인 컴퓨터에는 현재 방송되는 상품 설명, 주문접수창, 대기 전화 수, 배송 관련 창, 고객상담 처리 보고 등 10여개의 창이 빼곡하다. 지금 방송되는 상품은 나라데코 극세사 침구 풀세트+차렵이불 세트. 상품 설명을 꼼꼼히 읽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고객님. 롯데홈쇼핑 이다람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수십 번 연습한 대로 첫 인사 멘트를 하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다짜고짜 질문이 날아왔다. “저거 사면 뭐뭐 줘요?” 배운 대로 “네 고객님, 지금 방송되는 상품을 구입하시면 어떤 구성을 받으시는지…”라고 말하는 도중 고객은 다시 “뭐뭐 주냐니까요”라며 바로 되묻는다.

“네 고객님 차렵이불 1장, 패드 1장, 베개커버 2장과 추가 구성으로 이불 1장, 베개커버 1장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답하기 무섭게 바로 “더블침대에 맞나요” 질문하는 고객. 더블침대 치수를 검색하는 동시에 이불 크기와 비교해 가능 여부를 말해줘야 한다. 어찌 보면 단순한 계산이지만 재촉하는 고객 때문에 자꾸 헷갈린다. “네 가능합니다”라고 말하자 “고마워요”라며 전화를 뚝 끊는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답이 늦어 고객 기분이 상했나 등 자책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옆에서 같이 듣던 김영이(가명) 상담원은 “잘하셨어요”라고 칭찬하며 “이 정도면 친절한 고객이에요”라고 말했다. 김 상담원은 하루 평균 20% 정도 ‘까칠한’ 고객들의 전화를 받는데, 지금 정도는 친절한 편이라는 설명이다.

밀려 있던 대기전화에 질문할 새도 없이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심한 사투리 억양에 잘 알아듣지 못하고 “네 고객님 실례지만 ○○○~라고 말씀하신 것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수십여 차례 반복하고 말았다.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 롯데홈쇼핑 스마트컨택센터 내부 모습. 장세영 기자 photothink@

간신히 통화를 마쳤지만 대기전화 알림 화면은 쉬지 않고 깜박인다. 핑크색과 민트색 중 어떤 이불이 예쁘냐는 질문, 예전에 구입한 제품을 반품하고 싶다는 고객, 방송이 너무 빨리 끝나 원하는 내용을 끝까지 못 봤다는 항의, 너무 마음에 들어서 4개를 구입해 각각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다는 주문 등.

반나절 동안 전화 100여통을 처리한 느낌이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그러나 화면에 표시된 내가 실제 받은 전화 수는 불과 21통. 반면, 베테랑 상담원이 하루 처리하는 전화는 150통 이상에 달한다.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김 상담원은 뻔한 대답 대신, 초보 시절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시각장애인 고객의 상품을 대화만으로 주문받아 처리했던 일들, 방이 너무 춥다며 따뜻하게 잘 수 있는 제품 추천을 부탁한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이불부터 온수매트, 속옷, 온풍기 등을 찾아 드렸던 기억들…. 홈쇼핑 유통 현장에서 일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는지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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