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읍 연동리에 가면 마치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듯한 고풍스러운 담장 길을 만날 수 있다. 바로 400년이나 된 종가 뒤 비자나무 숲속으로 가는 담장 길이다. 여행의 묘미는 앞에 보이는 것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찾아보는 재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녹우당의 담장 길을 거닐며 비자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듣는 것은 이곳 여행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어부사시사’로 잘 알려진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칠순이 넘도록 유배지에서 고생하며 고난을 견뎌낸 인물이기도 하다. 무려 15년 동안 유배를 당한 윤선도는 유배기간의 ‘강요된 은둔’ 속에서도 세상을 밝히는 주옥같은 시들을 남겼다. 고산은 보길도에서 은자 생활을 하다가 85세 때 부용동에서 세상을 떴다. 필자는 몇 년 전 2월 봄방학 때 아들과 함께 보길도를 도보 여행한 적이 있다. 2월의 추운 날씨인데도 보길도와 해남 그리고 땅끝마을 등에는 동백나무가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해풍을 견뎌내고 피워낸 동백의 기품과 자연의 섭리에 겸손한 마음마저 들게 했다.
고산은 유배 등 정치적 고난을 이겨내고 실용학문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고산은 당시의 사대부로서는 거들떠보지 않던 의학, 천문, 지리, 점성술, 음악, 미술 등을 두루 섭렵했다. 그래서 녹우당은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접할 수 있는 ‘잡학 도서관’ 역할을 했다. 후손뿐만 아니라 인근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었다. 윤선도는 이러한 학문을 연구했을 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이를 직접 응용했다. 그는 한의학에 정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약을 처방해 주기도 했다. 녹우당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그중 하나가 ‘노학암(老學岩)’이다. ‘늙도록 배움이 있는 방’이라는 뜻이다. 고산 윤선도 가에 내려오는 공부법은 바로 오늘날에도 주목받고 있는 ‘자기주도적 공부법’이다.
자녀와 함께 나들이할 기회가 있다면 실용적이고 개방적 문화를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 해남의 녹우당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