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구 타이밍이에요”, “뛰네요”, “이건 아니에요”, “이래서 야구 몰라요.”
한 야구 해설위원의 방송 멘트다. 해설위원의 눈은 천리안이라도 되는 걸까. 미리보고 내다보고 꿰뚫어본다. 물론 해설위원의 예측이 100% 맞을 리는 없다. 그러나 야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해석해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준다. 일부 야구팬은 야구보다 해설이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위 해설위원은 한국 야구 해설 1세대 하일성(65)이다.
하일성은 1980년대 한국 프로스포츠가 본격 출범하면서 설득력 있는 야구 해설로 주목받았다. 프로야구가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면서 그의 명성도 고공비행했다. 모든 종목을 통틀어 가장 인지도 있는 스포츠 해설위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야구 몰라요”, “이건 아니에요” 등 중독성 있는 멘트와 차근차근한 도시형 어조로 야구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하일성의 도시형 해설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도 있었다. 다소 어설픈 발음에 학구적인 이미지를 더해 호감을 이끌어내며 스타덤에 오른 허구연(63)이다.
허구연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다. 일본, 쿠바를 차례로 꺾고 사상 첫 구기종목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낳아서일까. 그는 곧 한국 야구의 인기 해설위원으로 떠올랐다. 루헨진(류현진), 배나구(변화구), 궈낵(권혁), 소낵(손혁), 췌인지압(체인지업), 이핸곤(이현곤) 등 단점으로 지적받던 특유의 엉성한 발음도 익살스러우면서 긍정적 이미지로 자리를 굳혔다.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해설위원도 있었다. 늘 새로운 프로야구 소식을 전해줄 것 같았던 김소식(71)과 신문보다 빠르고 정확한 축구해설이 기대되는 신문선(56)이다. 특히 신문선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뜨거웠던 FIFA 월드컵 열기로 인해 웬만한 스포츠스타 인기를 능가했다. 비교적 상세한 설명과 특유의 입담이 더해 ‘신문선표’ 축구해설을 탄생시켰다.
신문선과는 정반대의 축구해설 스타일로 주목받은 사람도 있다. 한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스트라이커 차범근(61)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축구팬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한 그는 매 경기 치밀한 전력분석과 코칭스태프 상황을 간결하고 명쾌한 어조로 설명했다. 특히 2002년 한·일 FIFA 월드컵 당시는 “좋아요!” 등 특유의 어조가 유행하기도 했다.
차범근이 월드컵을 통해 친화력을 다졌다면 올림픽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사람도 있다. 일명 ‘빠떼루 아저씨’로 불리며 전 국민적 지지를 얻은 레슬링 해설위원 김영준(64)이다. 그는 전통 메달밭이던 레슬링에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호감을 얻었다. 한때 “빠떼루를 줘야 합니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최근에는 스포츠스타에서 해설위원으로의 데뷔가 눈에 띈다. 농구 코트에서는 1990년대 농구대잔치 스타들의 해설 대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풍부한 경험과 친근한 이미지로 1990년대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농구스타들로 우지원(41)이 가장 대표적이다.
선수 시절 빼어난 외모와 실력을 갖춰 여성 농구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코트의 황태자’라 불렸던 우지원은 2010-2011시즌 프로농구(KBL) 개막전부터 마이크를 잡았다.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비교적 꼼꼼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의 목표는 명품 해설을 통해 1990년대 농구대잔치 열기를 재현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아내 이교영(36)씨와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숨겨둔 끼를 발산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우지원 이외에도 양준혁(45·SBS), 이순철(53·SBS스포츠), 양상문(53·MBC스포츠+), 이용철(50), 이병훈(47·이상 KBS N), 김용희(59), 안경현(44·이상 SBS스포츠) 등 야구선수 출신 해설위원과 이상윤(45·MBC스포츠+), 신연호(50·SBS스포츠) 등 과거 축구스타들도 선수 이미지에서 탈피, 자신만의 해설 스타일로 스포츠 중계 전쟁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