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한국의 중소기업은 여러 면에서 기대에 못 미친다. 기술력 있는 부품·소재 중소기업이 많지 않고, 유능한 젊은이들이 선뜻 지원할 정도의 보수와 발전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도 드물다. 괜찮은 취업 기회가 있는 사람은 창업을 기피하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한국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기술력, 경영능력 등을 갖춘 뛰어난 인재가 창업에 많이 뛰어들고 이들이 오래 기업을 경영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회사 대표이사 등 실제 경영자의 연대보증제 폐지가 꼭 필요하다. 아직 한국에서는 회사의 은행 차입이나 세금 등에 대해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이 의무화돼 있다. 회사가 도산하면 대표이사 등은 개인재산까지 내놓아 회사 채무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숨겨놓은 돈이 없는 한 빈털터리가 되고 잘못하면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다. 얼마 전 송파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자살사건도 연대보증제와 관계 있을지 모른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살던 집을 빼앗기고 지하방에 세 살다 남편은 암으로 죽고 나머지 가족들도 생활고로 자살했기 때문이다.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제는 경영자의 회사 돈 빼내기 등 도덕적 해이를 막고, 은행 차입 등을 쉽게 하기 위한 제도이나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 창업은 대부분 실패 가능성을 갖고 시작한다. 보유재산의 일부만 투자해 창업했다가 실패했을 때 나머지 재산까지 날리게 된다면 경제력 있는 사람은 창업이 두렵다. 또한 창업에 성공해 회사를 잘 운영하다가도 거래 기업 도산이나 시장상황의 급격한 악화 등으로 도산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회사 경영자는 저축 등을 통해 그간 모아 놓았던 개인재산을 지킬 수 없다.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제는 창업과 기업경영 전 과정에서 회사 경영자에게 강한 심리적·현실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마 능력 있는 인재가 창업을 기피하고, 경영자는 잘되는 회사도 적당히 정리하고 보다 안전한 임대사업 등에 관심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일지 모른다.
다음으로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제는 회사 돈 유용 방지나 채권자 보호 등 원래 기대했던 효과도 거의 없다. 실제 도산한 회사를 보면 회사뿐 아니라 경영자도 빈 껍데기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이 악화되면 회사를 살리기 위한 자금 투입도 있지만, 회사 자금과 개인재산의 빼돌리기도 같이 나타난다. 또 일부 경영자는 회사 경영이 좋을 때부터 회사 돈을 해외나 제3자 이름으로 빼돌려 잘못됐을 때를 대비하기도 한다. 회사 돈을 미리미리 빼돌려 잘 숨겨 놓은 사람은 회사가 망해도 잘 살 수 있고 재기도 더 쉽다. 나아가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제는 일부 경영자의 이러한 회사 돈 빼돌리기를 조장하고, 이러한 행위에 대한 도덕적 저항감을 약화시킨다. 반면 회사 돈을 빼돌리지 않고 법과 원칙대로 회사를 경영한 사람은 회사가 도산했을 때 개인재산을 지킬 수 없어 바로 극빈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것은 양심적이고 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만 피해를 주는 대표적 역선택 사례다.
어떤 제도가 이와 같은 역선택을 구조적으로 조장한다면 이는 아주 잘못된 제도다.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경영자의 횡령·배임·사기 등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이 정도라면,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제는 억지로 만든 샛길인 셈이다. 창업과 기업의 발전을 막고, 중산층 붕괴의 원인이 되고, 법을 지킨 사람을 더 어렵게 하는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제는 폐지해야 한다. 어떤 정책이든 부작용은 있다.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제 폐지로 금융기관의 대출 기피 등 부작용이 예상되지만 긍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면 보완책을 만들어 시행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