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슈퍼 갑' 홈쇼핑, 상생은 없었다 -한지운 산업부장

입력 2014-04-0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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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 판매라는 게 겉으로 볼 때 괜찮을지 몰라도 실속은 그리 없는 장삽니다. 수수료율도 높은 데다가 MD(상품기획자)들이 별도로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아요. 방송을 끝내고 수지타산을 맞춰보면 손에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몇년 전 만났던 한 중소기업 사장의 말이다. “그럼 안 팔면 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판로가 있어야지요”라며 푸념을 했다.

그는 음성적 수수료를 지적했다. 가뜩이나 비싼 판매 수수료 외에도 ARS 비용이나 세트 설치비용을 요구하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 여기에 일명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오전 9시에서 12시대를 약속하며 뒷돈까지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가 과도한 요구라며 거절하자 이 회사 제품은 번번이 좋은 시간대를 배정받지 못했다. 결국 다른 홈쇼핑으로 옮겼지만, 정도만 다를 뿐 리베이트 요구 등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그를 만난 이후 몇 번의 홈쇼핑 비리 사건이 있었고 그때마다 업계는 자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몇년 뒤인 지금도 이 같은 악습은 그리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검찰은 2일 롯데홈쇼핑 간부 4명을 구속했다. 판매량이 높은 방송 시간대를 배정해 주겠다고 업체들로부터 뒷돈을 뜯어내고 하도급업체를 통해 비용을 부풀려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다. 생활용품을 담당했던 간부는 골든타임 편성 청탁을 통해 5개 업체에게서 4년 동안 9억원을 받았고, MD는 대형 자동차 등 2억7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 다른 간부 두 명은 하도급업체에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시키고 공사비를 부풀린 뒤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회삿돈 수억원씩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이 챙긴 돈은 20억원 가까이에 달한다. 게다가 이 돈의 일부가 롯데홈쇼핑 사장을 지낸 신헌 롯데백화점 사장에게 흘러간 혐의도 포착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홈쇼핑이 물건을 팔기까지는 다양한 단계를 거친다. 업체의 상품 제안부터 MD의 검토 과정, 이후 내부적인 회의를 통해 최종적인 제품 선택 여부를 결정하고 구체적인 납품 조건 등을 협의하게 된다. 이후에는 방송 준비과정과 송출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한 명보다는 다수의 결탁에 따른 조직적 양상을 띠는 경향이 많다. 만일 신헌 사장까지 연루된 것으로 확인된다면, 회사 자체가 하나의 조직적인 범죄집단이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앞서 2012년 말에도 4개 홈쇼핑업체 관계자 7명이 납품업체로부터 청탁과 함께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바 있다. 이들은 매달 수백만원의 돈을 월급식으로 상납받았고, 매출액의 4%를 리베이트로 챙겨 팀장 등 윗선에 전달했다.

불과 2년여 동안 5개 홈쇼핑 업체에서 비리가 발생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홈쇼핑업계는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대하는 납품업체들은 중소업체다. 납품업체에게 홈쇼핑업체는 ‘슈퍼 갑(甲)’인 것이다. 홈쇼핑 판매가 절실한 영세 중소기업에게 재벌그룹들은 우월적 지위를 통해 판매와 홍보를 좌우하는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고, 이 같은 관계는 비리가 일어나기 쉬운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좋은 제품을 만들더라도 판매망이 취약하고 큰 비용이 필요한 광고를 하기 힘들다. 중소기업의 한 임원은 “남는 것이 없더라도 홈쇼핑 판매를 진행하는 것은 1시간 이상 제품을 판매하는 것 자체가 제품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하나의 광고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뒷돈 요구와 같은 납품비리에 대해 홈쇼핑업계의 오랜 관행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것은 업계의 책임이 크다. 말뿐이 아닌 진정한 자성을 통해 비리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원천 차단하는 내부 감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홈쇼핑은 중소기업에게 성장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협력자가 돼야 한다. 이것이 기업들이 흔히 외치는 ‘상생’이자 ‘동반성장’이다.

더불어 검찰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관련자를 엄벌해 업계의 비리와 횡포를 막아야 한다. 강한 처벌은 업계가 변화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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