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사의 부동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의 경우 비업무용 부동산은 물론이고 사옥, 연구센터 등 업무용 빌딩까지 모조리 내다 팔고 있다.
일각에선 다양한 정보에 가장 빨리 접근할 수 있는 대기업들의 부동산 매각 붐에 대해 전체 부동산시장의 하락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삼성전자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글로벌마케팅 연구소, 대치빌딩 양평사옥, 인천사옥, 부천사옥 등 업무용 빌딩을 무더기로 내다 팔았다.
토지 9필지, 건물 14개, 오피스텔 71개 등 총 1392억원에 달하는 부동산이 일괄적으로 외국계 자산업체에게 매각된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들이 유동성 차원에서 비수익 부동산이나 유휴부동산 등과 같이 비 업무용 부동산을 내다 파는 경우는 종종 이었지만 이번 삼성전자의 부동산 매각처럼 업무용을 일괄 매각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지난 8월 정부과 부동산 투기 업체를 위한 소위 8.31정책을 내놓을 당시, 삼성은 "비업무용 부동산 등 관련 자산 비중이 거의 없기 때문에 8.31 부동산 종합대책에 따른 영향이 없으며 별다른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때문에 업계에선 "'각종 정보나 트랜드에 있어서 가장 빨리 접근하고 행동하는' 삼성이 부동산을 팔 정도면 이미 부동산 하락을 예측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삼성외에도 기업들의 부동산 매각이 줄지어 목격되고 있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은 올해 초 그룹본사 사옥까지 팔았다. 표편적인 이유는 인천정유인수를 위해 대금 마련이라고 밝혔지만 궁극적으로 지난해부터 무수익 및 저수익 자산을 종리한다는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SK사옥의 매각은 재계에 있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동안 관례에선 일단 사옥을 짓거나 빌딩을 매입하면 가치가 크게 올랐고 여유자금을 다른 어느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 큰 이익을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지고 있다고 느낀 SK가 사옥을 팔고 현금유동성을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 SK, 인천 용현동 부지 올해안에 매각
SK는 사옥뿐만 아니라 팔 수 있는 부동산은 대부분 시장에 내놓았다.
2004년부터 매각을 추진한 1만7000여평 규모의 인천 용현동 부지도 올해 안에는 무조건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매각 가격이 2000억~2500억원 선에서 논의됐던 이 부지는 지난해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제값을 받고 자산을 매각하기가 쉽지 않아 매수세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매각을 잠정 보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초 다시 530억원을 투입해 오염복구 시설을 정비했으며 올해 내 매각할 예정이다. 기름 저장창고로 쓰였던 이 부지는 현재는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고 잇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전국에 흩어진 부동산 정리를 내부적으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 확보를 위해 보유 부동산 일부는 팔고 일부는 임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롯데가 부동산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며 "일본에서 부동산 거품을 경험한 바 있는 신격호 회장이 현 한국 상황이 그 당시 일본과 유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신 회장이 직접 부동산 매각 검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한화, 부동산 매각으로 기업 가치 올라
부동산 매각으로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는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화의 경우 최근 부동산 자산 매각 발표 후 시장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달 한화는 인천 남동구 소재 공장용지 69만평을 화인캐피탈과 주거단지로 공동개발하고, 우선 대상 용지 50%를 31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50%는 앞으로 개발을 통해 2006년 이후 회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용지 매각을 통해 현금 6200억원이 순차적으로 들어 올 것으로 보인다. 또 주거단지 분양매출이 2조4000억원에 달하고 한화 지분율과 세금 등을 고려하면 약 1200억 원에 이르는 이익이 기대되고 있다.
여기에다 개발 시공을 자회사인 한화건설이 담당하기로 해 이를 통해 1000억원 정도 이익도 거둘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생명과 함께 국내 부동산 업계의 대표적인 ‘큰손’인 교보생명 은 지난 2월 서울 은평 사옥과 성동 사옥, 사당동 사옥을 매각했다.
국내 물류업계는 경기침체, 공급과잉, 경쟁심화라는 3중고에 시달리고 있는데 여기에 유가상승과 지급수수료율 인상 압박에 따른 비용부담도 새롭게 고개를 들고 있다. 한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주요 사업부문인 물류와 택배부문의 수익성 악화추세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게 업계의 예측이다.
결국 장부가 기준으로 2684억원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한진은 이들 토지의 활용 혹은 매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일부 컨테이너 야드의 이용률이 낮아 용도변경을 통한 매각 또는 개발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부동산 매각으로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에선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잠정 보류하기도 했다.
◆ SK텔레콤 현대제철 알리안츠생명...부동산매각 시점 너무 늦었나
SK텔레콤은 지난해 말에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빌딩 4개와 기지국 40개, 나대지 50만평을 매각키로 하고 지난 12일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투자제안서를 받았다.
당시 물건으로 내놓은 부동산은 토지가 84만8872평, 건물이 217만7594평이다. SK텔레콤은 빌딩 4개, 기지국, 40개, 나대지 50만평을 일괄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부동산 가치만 2000억원이 되는 대규모였다.
하지만 지금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SK텔레콤측은 해당 담당자가 해외출장중이라는 말과 함께 "부동산 매각이 갑자기 중단된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입찰회사들이 2000억원대의 부동산 규모와 함께 빌딩과 나대지를 동시에 매입하는데 부담감이 컸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제철(옛 INI스틸) 역시 서울 성수동부지(991억원), 상봉동 부지(385억원), 풍납동 부지(55억원) 등을 매물로 내놓았지만 아직 원매자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독일계 생명보험사인 알리안츠생명도 자산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서울 여의도 본점과 지점 등 37개 사옥의 일부 또는 전체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사옥을 모두 매각할 경우 매각 대금이 5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알려졌다.
덩치가 크다보니 선뜻 나서는 회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업계에선 기업들의 부동산 매각 붐에 대해 "이미 많은 기업들이 부동산을 소유 개념이 아닌 임대 개념으로 인식하 기 시작했다"고 전제하면서도 "부동산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핵심 역량이 아닌 곳에 막대한 금액을 묶어 두느니 핵심 사업에 투자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