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만두와 호떡집 -박병원 예금보험공사 수석책임역

입력 2014-06-2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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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란 음식이 있다. 지금은 라면, 깁밥과 함께 분식집의 3대 축으로 자리잡으며 싸고 간편한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만두는 그리 가벼운 음식이 아니다. 이 음식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되고 끊임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음식인 것이다. 만두의 역사는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이 활약하던 삼국지의 시대로 거슬러 올가간다. 만두는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그렇다면 처음 중국에서 유래한 만두는 언제 우리나라에 전해졌을까? 만두에 대한 기록이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 선생의 글에 보인다. 성호선생의 저서 성호사설 제4권 만물문(萬物門)에 ‘만두·기수·뇌구’라는 제목으로 만두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들어 있다.

조선시대 상류층만의 특별식이었던 만두가 요즘처럼 누구나 즐기는 서민음식으로 탈바꿈한 것은 개화가 되고 난 후의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만두의 서민화가 20세기 초 화교들이 이주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이주하기 시작한 화교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지만 초창기에 가장 많이 종사했던 업종은 요식업이었다. 자본을 모아 대규모로 고급음식점을 여는 화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보편적인 형태는 규모가 작은 호떡집을 여는 것이었다. 화교들의 호떡집은 가격이 저렴하고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맞아 특히 서민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았다. 그런데 당시 호떡집에서 만들어 판 호떡 중에는 만두도 포함되어 있었다. 떡에 중국을 뜻하는 ‘호(胡)’ 자를 붙인 것이니 호떡집은 중국 빵가게란 의미였다. 이 화교들의 빵가게에서는 당화소(糖火燒), 계란빵, 깨빵, 구운빵, 만두, 포자 등을 팔았다. 호떡집에서 팔던 빵을 통칭하여 ‘호떡’이라 불렀으니 만두도 호떡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당시 호떡집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호떡은 당화소였다. 당화소는 둥글납작한 밀가루 반죽에 검은 설탕을 넣어서 만든 빵인데 지금은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튀겨내지만 당시는 화덕에서 구워내던 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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