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간의 살인, 방화에 이어 층간소음 분쟁이 여러 사회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분쟁도 해를 거듭할수록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12년 7000여건이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민원이 작년에는 1만5000여건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전국 주택 1466만7000호 중 공동주택은 857만6000호로 58.4%를 차지한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를 보면 공동주택 가운데 전체 아파트 입주민의 88%가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중 절반 이상(54%)이 이웃과 다툰 경험이 있고, 8%는 이사를 2%는 병원치료를 받았다. 이쯤 되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지난 5월 정부가 나섰다. 법적기준을 마련했다. 친절한 정부다. 이웃 간의 다툼까지 세세히 챙기는 정부를 보면서 이 나라 국민이어서 축복받았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시행에 들어간 ‘공동주택 층간소음 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뛰거나 걷는 소리, 문이나 창문 닫는 소리, 탁자나 의자 끄는 소리, 텔레비전이나 악기소리 등 전달소음까지 1~5분, 주야간으로 세분화했다. 2005년 6월 이전 지어진 공동주택은 또 다르단다. 복잡하기 그지없다. 집안 구석구석 소음 허용치를 포스트지에 적어 붙여야 할 판이다.
한마디로 정부의 친절함을 따르려면 퇴근 후 아파트 현관을 넘는 순간부터 허수아비가 돼야 한다. 식탁을 버리고 옛날 상을 꺼내 쓰고, 청소기 대신 창문 환기를, 아이들이 뛰노는 소파를 내다 팔고 클래식을 듣는 고상함을 버려야 한다.
특히 민원의 73%를 차지하는 아이들의 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아예 묶어 두거나 24시간 까치발 생활, 또는 ‘공중부양’을 연마토록 해야 할 지경이다.
층간소음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복되는 소음은 인체의 각종 생리현상에 악영향을 미치고 심각한 스트레스 및 수면장애를 유발한다. 또 아드레날린 분비가 활발해지면서 혈압상승 및 혈관수축 등 증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심장이나 뇌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최근 스웨덴 캐롤린스카연구소가 도로교통 소음에 장기간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3666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교통소음이 50㏈(데시벨) 이상인 곳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근경색 위험이 40% 높게 나타났다.
독일 환경보건연구소의 알렉산드라 슈나이더 박사팀의 연구에서도 소음이 클수록 심장박동이 빨라져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기준을 찍 긋고, 층간소음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넘긴다. 너희 문제니 이제 싸우거나 불 지르지 말고 소송을 통해 해결하라는 식이다. 참 쉽게 정책을 편다. 부실하게 시공한 건설사에 책임을 묻기는커녕 마치 가이드라인을 법으로 정해줬으니 고마워해야 한다는 논리다. 제대로 지으면 될 일을 본말이 전도됐다.
층간소음은 국민들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즉, 이웃 간에 서로 이해하고 인내하는 차원을 한참 넘었다는 말이다.
정부는 소음을 원천적으로 방지 내지 최소화할 수 있도록 건축 기준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바닥구조 및 공법을 개선하는 것이 층간소음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다.
예를 들면 운동화 밑창에 여러 층의 고무를 두는 것과 유사한 ‘다층완충 구조’나 바닥에 공기층을 두는 ‘뜬바닥 구조’ 등 소음차단 효과가 탁월한 공법을 의무적용토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아파트 및 공동주택 시공 단계부터 층간소음 기준을 관리·감독해야 한다. 그 틀에 맞게 층간소음 기준도 다시 세워야 한다.
정부는 언제까지 아파트 입주민 10명 중 9명이 호소하는 층간소음을 단순히 국민 간 분쟁 조정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지. 또 국민은 뒷전인 주거정책만을 고집할 것인지. 기가 찰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