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난입한 중국인 5명의 불청객은 넥슨 전 직원에 술을 권하며 “제발 넥슨 게임을 중국에서 유통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걸한다.
이 불청객은 바로 현 세계 최대 게임회사 중국 텐센트의 공동창업자 5인방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여 후, 텐센트는 넥슨, 엔씨소프트를 제치고 세계 최대 게임회사로 등극, 글로벌 시장을 평정했다.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125조원, 삼성전자(200조원)의 63% 수준이다.
국내 게임사들이 세계시장을 호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게임 자체가 삼성, LG 같은 재벌기업과 경쟁하거나, 대기업에 납품하는 아이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기업의 견제와 횡포로부터 자유로웠다.
여기에 김정주, 김택진이라는 한시대를 풍미하는 걸출한 천재 창업자들이 등장한 것도 결정적 요소였다.
세계를 평정했던 코리아 게임산업이 10년여 만에 챔피언 자리를 내준 채 쇠락기에 접어들고 있다.
과연 10년여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정부정책, 한국과 중국 공무원들의 차이가 빚어낸 참극이다.
게임산업의 파괴력은 전 세계 200여개 나라 이용자들이 한번 그 게임의 맛에 빠지면 한 명의 고객이 대략 10년간 매달 꼬박꼬박 매출을 만들어주는 놀라운 고객 장악력에 있다.
생산공장도 물류도 없다. 업데이트로 만족도만 유지하면, 연간 수십조원을 벌어들이는 달러박스 자체다.
놀라운 사실은 중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쾌적한 게임사업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개발에 관한 한 중국정부의 규제는 외국 기업이 중국시장에 직접 진출, 유통을 할 수 없게 하는 자국보호 정책 외엔 거의 없다.
한국처럼 셧다운제니, 게임을 도박, 마약류로 분류해 규제하려는 게임중독법 등등의 규제가 중국에는 전무하다.
중국 공무원들의 놀라운 순발력은 창업 16년 만에 글로벌 챔피언 텐센트를 탄생시켰다.
치명적인 비극은 이 텐센트를 키운 게 바로 한국산 게임이라는 점이다.
중국 공무원의 빼어난 정책감각과 한국 공무원의 꽉 막힌 규제정책은 10년여 만에 중국이 연간 90조원대에 이르는 세계 게임시장을 폭풍 흡입해버리는 기막힌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 내 실상은 더욱 충격적이다.
2014년, 현재 한국산 대형 게임의 절반 가까이가 텐센트 자금으로 개발 중이고, 절반이 넘게 텐센트를 통해 퍼블리싱(유통)되고 있다.
국내 게임사들은 6, 7년 전부터 슈퍼 갑 텐센트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중국(세계)에서 퍼블리싱 해달라”며 애걸복걸하고 있다.
텐센트는 스마일게이트의 1인칭 슈팅(FPS)게임 ‘크로스파이어’를 갖고 가 중국에서 현지화, 크로스파이어 게임 하나로 1조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네이플의 ‘던전앤파이터’ 등 수많은 한국산 게임을 들고 가 중국시장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긁어모았다.
텐센트는 2011년에서야, 리그오브레전드로 유명한 롤(LOL)게임사 라이엇게임즈를 인수, 본격적인 게임개발 회사로 나선다.
이뿐 아니다. 텐센트는 CJ E&M 넷마블에 5300억원을 투자, 3대주주로 올라섰고, 2012년에는 카카오에 720억원을 투자, 지분 13.8%로 2대 주주다.
국내 게임사에 허리를 숙이던 텐센트는 이제 우리의 안방까지 싹쓸이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국내 대형 게임사 핵심개발자들이 2, 3년 전부터 대거 중국으로 건너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금, 유통권력에 핵심개발자들마저 대거 중국으로 이탈하고 있는 것은 코리아 게임산업의 종말을 알리는 명확한 시그널이다.
중국 게임사들이 정책지원에 힘입어 날개를 다는 사이, 토종 게임회사들은 오늘도 도박, 마약류 같은 사회악과 동일 취급하는 게임중독법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다.
텐센트의 성공스토리는 정책이 창조경제의 싹을 불태울 수도, 글로벌챔피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챔피언이던 한국 게임사들은 10년 넘게 쏟아지는 규제정책에 이제 2류, 3류로 추락했다.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 정책의 현실은 참혹하다. 규제정책은 게임사들이 본사를 모조리 해외로 옮겨, 씨가 완전히 말라 비틀어진 뒤에나 끝날 태세다.
문화체육관광부,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들은 중국 게임사를 위한 X맨이라는 농담이 참으로 서글프게 들리는 2014년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