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세법개정으로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 부담이 9700억원 가량 늘어나고 서민ㆍ중산층과 중소기업은 약 4900억원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고액연봉자에 유리한 퇴직소득세 과세체계를 개선하고 투자, 배당 등에 쓰지 않은 일정 사내 유보금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등 기업 곳간과 고소득자의 지갑을 열어 가계의 소득을 늘려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추산한 ‘2014년 세법개정안’에 따른 추가 세수효과는 내년부터 2019년까지 총 5680억원 수준이다. 올해도 대규모 세수 결손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세제까지 경기부양에 동원하면서 공약가계부 이행과 나라살림 운영에 경고음이 커지게 됐다.
정부가 6일 내놓은 내년 세제개편안은 ‘서민·중산층의 가계소득 증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내수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선 민생이 안정되고 소비가 살아나야 한다. 최경환식 경제정책 기조에 맞게 세제도 경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확장적인 방향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다.
정부는 내년 세제개편을 통해 5680억원의 세수증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 그리고 중소기업이 4890억원 가량 세부담 감소 혜택을 받게 되며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부담은 9680억원 정도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간접외국납부세액공제 개선, 퇴직소득세 과세체계 개편, 중고차에 대한 부가가치세 의제매입세액공제 축소를 통해 세금을 더 걷기로 했다. 반면 민생안정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근로소득 증대세제 신설, 퇴직연금 세액공제 납입한도 및 주택청약종합저축 소득공제 확대 등은 세수 감소 요인이다.
문창용 기재부 조세정책관은 “간접외국납부세액공제에서 3000억원이상 늘고 퇴직금 과세체계 개편으로 3300억원 등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세수가 줄어드는 부분은 근로소득증대세제 1000억원 정도, 퇴직연금 세액공제 한도 확대 1600억원, 그리고 주택청약종합저축으로 800억원 정도의 세수가 줄어들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번 세법개정을 통해 향후 5년간 거둘 수 있는 세수효과가 약 5700억원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연도별 세수 기대효과를 보면 내년 550억원을 시작으로 2016년 510억원, 2017년 1090억원, 208년 580억원, 2019년 이후 2950억원 등이다.
당장 작년에 이어 올해도 8조5000억원의 세수가 부족할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에서 세제 지원을 늘리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을 보면 가계소득을 늘릴 수 있는 각종 세제상의 인센티브를 늘리고 비과세·감면 정비는 좀 더 완만한 속도로 가져갔다. 세제도 경기확장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세입 확충에는 구멍이 뚫릴 수 밖에 없다.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2기 경제팀이 41조원 규모의 과감하고도 공격적인 경기 대응에 나서면서 이미 재정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 문제는 공약 가계부 상의 세입 확충 계획은 더욱 지체될 것이라는 점이다. 박근혜정부가 지난해 발표했던 공약가계부를 보면 임기 5년간 공약이행을 위해 필요한 재원은 134조8000억원으로, 이 중 48조원을 추가적인 국세수입으로 조달하도록 돼 있다. 공약 가계부 상에서 내년에 11조1000억원, 2016년 12조9000억원, 2017년 13조6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도록 돼 있다. 이 중 내년부터 2017년까지 세법개정을 통한 비과세ㆍ감면 정비와 금융소득 과세강화 세입 목표는 18조5000억원에 달한다.
빨간불이 들어온 것은 공약가계부 뿐만이 아니다. 확장적 세제 정책으로 균형재정을 달성해 나라살림을 튼튼히 하겠다는 정부의 계획도 틀어지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당장은 적자 재정이 불가피하지만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에는 재정 적자 수준(관리재정수지 기준)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0.4%인 7조4000억원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15~2017년에는 재정 긴축에 들어가고 국가 채무는 GDP 대비 30% 중반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대로라면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줄이기는 커녕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박근혜 정부 임기 안에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는 균형 재정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 졌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