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에도 1조원대 배당 추진 문건이 외부에 알려져 파장을 일으킨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에 대한 금융권의 시선이 싸늘하다. 특히 고배당을 위해 금융당국, 청와대, 국회를 아우르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배당 로비 계획…한국 철수 의혹 = 최근 한국SC은행은 올해 영국 본사에 보낼 배당금을 1500억원 미만으로 책정했다. 1조원대 배당금을 영국 본사로 송금하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외국계 은행의 먹튀 논란과 금융당국의 주먹구구식 대응이 되풀이되며 고배당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금융감독원은 한국SC은행이 1조1620억원(11억 달러)의 거액을 영국 본사에 배당 형식으로 송금하려는 계획을 확인했다. 금감원이 입수한 지난 3월 작성된 한국SC은행의 내부 보고서는 고액 배당금을 영국 본사로 가져가기 위한 SC그룹의 실행 계획서 내지 로비 문건으로 압축된다.
14쪽짜리 문서에는 한국SC은행이 김앤장과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KPMG 등 유수의 로펌과 컨설팅 회사에서 조언을 받아 11억 달러 송금 목표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또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아제이 칸왈 한국SC은행장은 물론 피터 샌즈 회장 등 SC그룹의 주요 경영진이 누구를 언제 면담해야 할지 등을 세세하게 적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을 일본계 금융회사인 제이트러스트에 매각하고 9월 SC펀드서비스를 은행에 합병한 것도 고배당 계획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실제 문건에는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 매각 대금을 배당금으로 활용해 한국SC지주사를 거쳐 한국SC지주사의 모회사인 SC동북아(NEA)로 송금한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문제는 외국계 금융회사의 본국 송금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는 없지만 114억원 적자를 기록한 현재 상황과 고액 배당을 위한 전방위 대정부 로비계획이 노출됐다는 점이다. 이에 한국 금융시장에서 짐을 싸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에 비례해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관피아 사외이사 대정부 로비 = 금감원이 확보한 문건에서 눈에 띄는 부문은 한국SC은행이 관피아 출신 사외이사들을 활용해 정부 인사 및 금융당국 관계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접근한다는 내용이다.
한국SC은행은 12명의 사외이사 중 7명이 국가기관 출신이라는 배경을 안고 있다. 이들은 한국SC지주의 사외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영국 본사에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10년부터 비상임이사직을 맡고 있다.
또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장을 역임한 박창섭 부행장 역시 눈에 띄는 인물이다.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장관급)은 이사회 의장이고, 정기홍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과 이광주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이사), 건교부 차관을 지낸 김세호 전 철도청장도 SC은행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SC은행은 권태신 의장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서도 금융당국과 적극적으로 접촉할 인사로 피터 샌즈 회장, 자스팔 아시아 CEO와 함께 권태신 의장을 거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권태신 이사회 의장이 본인의 커넥션을 활용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는 표현까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관피아 출신 사외이사들로 하여금 정치적 접근으로 관련 문제를 무마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르면 이번 주 한국SC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한편 한국SC은행이 고배당과 관련해 조직적 로비활동을 펼쳤지만 금융당국은 이를 법규 위반으로 처벌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문건의 성격이 경영계획에 해당하는 내부 보고서이고 은행의 공식적 입장과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배당은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은행 업황 전망을 고려한 정성적 판단으로 과도한 배당은 감독대상으로 규율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