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내년 역시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현대증권 등 크고 작은 증권사들의 매각이 예정돼 있는데다 은행간 복합점포 허용, 방문판매법 시행 등 인력 감축의 단초가 될 만한 요인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증권맨, 올 한해만 4000명 떠나
“올해 살아남았다고 해서 내년을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연말 안부를 묻는 질문에 한 증권사 직원이 내놓이 쏟아낸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을 한 직원은 희망퇴직을 실시한 증권사 직원이 아니다. 여의도 증권가의 분위기가 얼마나 얼어붙어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3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4만1022명에 달했던 증권사 임직원수가 지난 9월 현재 3만7026명으로 400명 가까이 감소했다. 영업환경 악화로 구조조정이 본격화된데 따른 것이다.
증권가에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울린 곳은 삼성증권이었다. 지난 4월 삼성증권이 근속 3년차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것. 삼성증권의 직원 478명이 직장을 떠나게 되면서 시작된 구조조정 한파는 증권사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삼성증권의 바통을 이어받은 곳은 유안타증권(구 동양증권)이었다. 모기업의 불미스런 사건까지 겹친 유안타증권은 739명을 감원해 가장 큰 규모의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어 대신증권(407명), HMC투자증권(212명), 하나대투증권(145명) 등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우리투자증권과 합병법인인 NH투자증권의 출범을 앞두고 있는 NH농협증권(120명)도 인력을 대거 정리했으며 현대증권도 매각을 앞두고 8년만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중대형사들의 구조조정 작업이 상반기 마무리 되는 모습을 보이자 하반기에는 중소형사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IBK투자증권이 연말 희망퇴직 접수에 나선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IBK투자증권은 이달 초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 LIG투자증권은 지점 2곳을 폐지하고, 정규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내년에도 구조조정 한파는 여전할 듯
증권사들이 이처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지점 축소, 인력 감축 등 비용절감 노력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증권맨들은 당분간 '살얼음판'을 걸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증권사 인수 합병 작업에 따른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로부터 합병 승인을 받은 메리츠종금증권과 아이엠투자증권이 그 대상이다.
또한 내년 줄줄이 매각이 예정돼 있는 증권사들도 매각 이후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매각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최근 매각 작업이 재개된 현대증권이다. 현재 일본 금융그룹 오릭스 등 3개 인수후보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KDB대우증권도 대주주인 산은금융지주가 내년중 매각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올해 한차례 매각 작업이 지연된 바 있어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이트레이드증권과 리딩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도 잠재적인 매물로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코스피200옵션 주문 실수로462억원의 손실을 낸 한맥투자증권의 퇴출도 결정돼 내년에도 여의도 증권가는 당분간 구조조정 ‘한파’ 영향권에 머무를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정책적으로 은행간 복합점포 허용, 방문판매법 시행 등 증권사에 판관비를 줄일 수 있게 해준 측면이 있어 표면적으로는인력을 유지하더라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인력이 대거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