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의류 공장인 방글라데시가 여왕 2명의 사투에 흔들리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세계 굴지의 의류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아 의류를 생산하는 봉제산업이 급성장했다. 그러나 세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현 총리와 칼레다 지아 전 총리 등 여성 지도자 2명의 갈등으로 이제 막 싹 트는 민주주의 정착은 물론 경제발전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9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여당인 아와미연맹(AL)을 이끄는 하시나(67) 총리와 제1야당 방글라데시국민당(BNP)의 당수인 지아(69) 전 총리는 반세기 동안 방글라데시 역사의 중심에 서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1991년 이후 양자는 격렬한 정쟁과 정권 교체를 반복해왔다. 이웃나라 인도의 지원을 받아 방글라데시 독립을 쟁취한 이후 AL은 친인도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BNP는 중도 우파 국민 사이에서 뿌리 깊은 반인도 정서를 품은 계층의 지지를 모으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방글라데시 반부패 특별법원이 지난달 25일 전격적으로 지아 전 총리에게 자선사업 관련 부패 사건 기소건으로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전쟁에 불이 다시 붙었다. 지아 전 총리는 당시 출두 명령을 받았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거부했다. 체포되면 종신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BNP 지지자들이 격렬한 항의에 나설 계획이다.
이들 여성 전ㆍ현직 총리의 뿌리깊은 갈등을 이해하려면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하시나 총리는 1975년 군사 쿠데타로 살해된 초대 대통령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장녀다. 당시 쿠데타를 주도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지아우르 라만이 바로 지아 전 총리의 남편이다. 라만 전 대통령도 1981년 또 다른 쿠데타로 살해됐다.
두 사람은 소중한 가족을 쿠데타로 잃은 뒤 정계에 입문한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특히 하시나 총리는 지아 전 총리에게 강한 원한을 품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아버지 살해에 관여한 라만 전 대통령의 부인인 지아는 정적 이상의 용서할 수 없는 원수라는 것이다.
지아 전 총리는 1991년 방글라데시 초대 여성 총리에 취임했을 당시 AL은 총파업으로 지아 정권에 대항했으며 결국 1996년에 정권을 탈환했다. 2001년 총선에서는 BNP가 압승했다. 2009년 다시 하시나가 총리에 복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과거 외부세계와 단절됐던 방글라데시라면 여왕들의 투쟁이 세계 다른 나라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방글라데시는 중국의 10분의 1 수준이라는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세계의 의류 공장으로 성장했다.
자라와 갭, 유니클로 등 캐주얼 의류 브랜드들이 잇따라 생산거점을 마련하면서 방글라데시는 의류 수출에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성장했다. 이에 2014 회계연도(2013년 7월~지난해 6월) 경제성장률은 6.1%를 기록했고 2015년에도 6% 이상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그러나 정쟁에 따른 총파업과 도로 봉쇄는 의류업체 생산 활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신문은 경고했다. 방글라데시의류제조수출협회(BGMEA)는 “최근 현지 기업들이 제품을 제대로 출하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은 물론 직원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출근하지 않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향후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군부의 개입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신용을 잃으면 방글라데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임은 분명하다. 한 의류업계 임원은 “방글라데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의류제조업이다”라며 “정치가 안정돼야 외국 기업이 우리 산업에 투자하는데 왜 2명의 여왕은 이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가”라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