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카드사·통신사에 이어 이번엔 공공 아이핀(I-PIN·인터넷 개인식별번호) 시스템까지 뚫렸다. 주민등록증 도용을 막기 위해 정부가 직접 만든 시스템이 해킹을 당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개인정보유출 사고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야말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국민에게 인식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번에도 내놓은 재발 방지책에는 근본이 없었다. 행정자치부는 아이핀을 폐지하는 대신 시스템 고도화를 선택했다. 24시간 점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의 해킹 훈련을 실시한다는 방침도 내세웠다. 그저 점검을 좀 더 잘 하겠다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시중에 떠도는 주민번호만으로 아이핀 발급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주민등록번호 개편책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았다. 예산이 많이 들고 혼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답답해진 국가인권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은 무작위 일련번호나 목적별 고유번호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설사 대안이 있다고 해도 정부에 이를 추진할 동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관련 사안을 언급한 이후 안전행정부 중심으로 개편을 검토했지만 장관 교체 후 흐지부지됐고, 올 업무계획에는 주민번호 개편 논의가 아예 빠지면서 추진할 부처가 없다.
최근 정부는 우리나라를 1등 ICT 국가로 만들기 위해 사물과 사람을 인터넷으로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하는 ‘초연결 시대’를 선포하고 상용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초연결 시대의 핵심은 모든 정보의 공유에 있다. 이런 정보공유는 자신의 정보가 보호되고 있다는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정책을 내세우기 전에 근본부터 살피는 작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