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의 여윳돈이 90조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가계의 표정이 밝지 않다. 경기가 언제 풀릴지 모르겠고 노후 대비도 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 늘린 돈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지난해 자금운용 규모는 전년(152조4000억원)보다 9.6% 늘어난 167조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자금조달 규모는 75조4000억원으로 15.8% 증가했다.
이에 따라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잉여(자금운용-자금조달) 규모는 지난해 91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87조4000억원)보다 4.9% 확대된 것이다. 가계의 잉여자금은 2012년 77조6000억원, 2013년 87조4000억원 등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문소상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가계의 자금잉여가 처음으로 90조원을 넘었다”며 “가계의 소비는 전년과 비슷한 증가율을 나타냈으나 소득이 더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은의 분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지난해 가계 관련 지표가 크게 좋지 않다. 가계의 씀씀이를 보여주는 평균 소비성향은 지난해 72.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쓸 수 있는 돈이 100만원이라면 72만9000원만 썼다는 얘기다. 또 지난해 민간소비 증가율(1.7%)도 2009년(0.2%) 이후 가장 낮아졌다. 11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와 노후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가 움츠러들면서 잉여자금을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기간 기업(비금융법인기업)의 자금부족 규모는 전년(31조5000억원)보다 확대된 33조2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일반정부는 자금잉여 규모가 전년(18조6000억원)보다 축소된 18조1000억원으로 조사됐다. 국외 부문은 자금부족 규모가 전년의 92조4000억원에서 99조원으로 확대됐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1년 전에 비해 커진 영향이다.
국내 비금융부문(금융 및 국외 부문을 제외한 가계 및 비영리단체, 비금융법인기업 및 일반정부)의 금융자산은 전년말에 비해 388조3000억원 늘어난 6278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금융부채는 4423조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73조원 증가했다.
부문별 금융자산을 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211조8000억원↑)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으며, 그 다음으로는 기업(109조1000억원↑), 일반정부(67조4000억원↑) 순이었다.
금융부채는 비금융법인기업(127조원↑), 가계 및 비영리단체(75조4000억원↑), 일반정부(70조6000억원↑) 모두 증가했다.
국내 비금융부문의 금융자산/금융부채 비율은 1.42배로 전년말(1.42배)과 같다. 이중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자산/금융부채 비율은 2.23배로 전년말(2.19배)에 비해 상승, 자산 건선전이 개선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 금융자산은 1조3587억원으로 전년비 7.1% 늘었다. 문 팀장은 “우리나라 금융자산은 2012년(6.6%), 2013년(5.1%)에도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냈다”며 “이는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자금순환표는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정부, 기업, 가계 등 경제부문 간의 금융거래(자금흐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통계다. 각 경제부문의 자금조달 및 운용패턴 등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