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프록시팀장이 올해 주주총회 관전평을 이같이 말했다. 아직 여러 면에서 한계가 많아 강한 ‘한 방’은 없었지만 향후 주총 개선의 밑거름이 될 만한 시도들은 있었다는 것이다. 윤 연구원은 주총 쏠림현상, 감사보고서 영문 번역, 주주 참여율 등에서 발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관 반대 건수 작년과 비슷…아직 갈 길 멀어=국민연금이 당초 현대차의 10조원 투자 결정에 대해 주총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KB이사회 문제가 불거지는 등 전년도에 비해 기관의 목소리가 돋보였던 주총 시즌이었다. 전자투표와 일반 주주참여형 주총의 도입도 주총 분위기를 들뜨게 할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윤 연구원은 “아직 집계가 되진 않았지만 올해 민간 기관투자자들의 주총 안건 반대 의결도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증권회사와 은행, 투신사 등으로 구성된 민간 기관투자자들은 전체 의결권 행사의 약 2.4% 수준에서 반대의결권을 행사했다.
그는 “기관들의 의욕이 전에 비해 돋보이긴 했지만 아직 국내 주총 문화가 매우 주주에게 비친화적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개선사항이 크진 않다”고 말했다. 가장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는 주총 일정과 관련된 문제를 꼽았다. 지난 27일 하루 동안만 12월 결산법인 1836개사의 45%에 해당하는 810개사가 주총을 열었다.
윤 연구원은 “주총 일정이 한꺼번에 몰리게 되면 기관 및 개인 투자자가 참석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주총 안건을 분석하는 우리 입장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가 곤란하다”며 “대만과 일본처럼 일별로 주총 쿼터를 두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총을 본사가 위치한 지방에서 여는 것 역시 주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금만 신경 쓴다면 한국거래소 회의장 등을 미리 예약해 주주들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서 주총을 열 수 있을 텐데 굳이 지방 본사에서 주주들을 불러들이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전자투표가 도입됐지만 최근 예탁결제원 통계에 따르면 기업의 전자투표 채택률과는 별개로 투자자들의 이용률은 기대 이하로 낮은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관의 주총 참여 자세 변화와 기업의 적극적인 주총 홍보를 주문했다. 단기 차익 실현의 투자방식이 주도하는 한국 투자문화에서 주주들이 장기적으로 기업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기관부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내 기관들이 기업과의 이해관계상 당장의 변화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해외 기관이 물꼬를 터주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며 “현재 해외 기관이 참고할 수 있는 영문 감사보고서가 드문데 한국거래소 등에서 나서서 영문 보고서를 활성화시키는 노력이 시장에서는 크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토크쇼 주총 등 ‘신선’…주주 참여 위한 기업 노력 계속돼야=윤 연구원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몇몇 기업이 도입한 토크쇼 형식의 주주총회 등에 대해서는 신선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토크쇼에 미리 시나리오가 정해져 있다는 주주들의 지적도 있었지만 시도 자체가 성공적이라는 것.
그는 “국내에서 풀무원이나 국순당 등 몇몇 기업만 ‘파티 형식’의 주주총회를 개최해 왔는데 이런 것들이 더욱 확산돼야 한다”며 “3% 이하의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들이 모일 수 있는 채널도 기업이 적극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주총 일정 쏠림현상이나 감사보고서 제출기한과 주총이 열리는 시기의 부적합성 등은 굳이 법률을 뜯어 고치지 않아도 관계부처의 협력을 통해 정비할 수 있다”며 “기업뿐 아니라 관계 정부부처의 노력이 선행되는지 여부가 내년 정기주총 모습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6월까지 금융위원회에서 도입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준칙)’를 통해 주주제안, 이사 후보 추천, 임시 주총 소집 등 더욱 강력한 기관 투자자의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