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국민연금이 삼성의 손을 들어주었을 때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삼성과 엘리엇의 다툼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궁금증’은 다양했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지켜주는 것이 삼성을 지켜주는 일인지, 삼성을 지켜주는 것이 국부를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인지, 국민연금의 선택이 국민의 노후대비와 직결되는 연금의 수익률 향상에 기여하는 것인지, 이 사안을 바라보는 해외의 투자자들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은 좋은 기업이 되는 것인지.
삼성과 엘리엇의 공방 중에 이와 같은 국민의 궁금증을 반기업 정서로 해석하는 이도 있었다.
‘한국은 반기업 정서가 강하다’는 주장은 늘 있었다. 기업이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며 국부의 증대에 기여했는데, 국민들은 이를 몰라준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피땀흘려가며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한탄도 자주 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주장들이 늘 간단한 질문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국민들은 이런 기업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것일까?
지금까지 기업들은 이런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그 답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반기업 정서라고 치부하고, 자신들만의 공식에 대입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일단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천문학적인 액수를 기업의 홍보에 투자한다. 그리곤 사회공헌 사업을 열심히 해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비전을 선포한다. 명망가를 이사로 영입해서 재단을 설립하고, 회사 차원에서 사회공헌사업 홍보 캠페인을 만든다. 이마저도 기업의 이미지나 매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만한 큰 사건이 발생해야 작동하는 공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실로 엉뚱했다. 들인 건 많은데 바뀐 게 없으니 말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우리 기업이 좋은 기업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반기업 정서가 강하다고 하지만, 현재 젊은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을 꼽으라면 대기업이다. 반기업 정서가 강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국민들은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소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면서, 국민들의 일상에 자리 잡은 기업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어떤가?
하청업체들은 단가를 후려치려는 기업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낮은 질의 고용 때문에 사람들의 삶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하다. 자식을 어린이집에 맡긴 직장인 부모는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에 애를 데리러 가지 못해 발을 구르고, 큰 맘 먹고 목돈을 만들어 투자에 나선 개미투자자는 소수 대주주들의 의사결정에 따라 주식가치가 오락가락해 맘을 조인다. 소수 과점기업들 간의 담합으로 책정된 소비자가에 하루 벌어먹고 사는 서민들은 허리가 휘고, 조그맣게 운영하는 빵집에 한 가족의 생계를 건 사장님은 어느날 갑자기 옆에 들어선 프랜차이즈 제과점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가게 셔터를 내리지 못한다. 그런데 지난 1년간 3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40조원 가까이 늘었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국민들이 기업을 사랑할 수 있으며, 기업의 의사결정에 신뢰를 보내고 지지할 수 있을까?
반기업 정서에 민감한 이들은 이러한 기업의 치부(致富)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른 것이라 말하곤 한다. 아마 전적으로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반기업 정서도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생긴 것이라고 함께 말한다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이젠, 이런 성장방식과 결별해야 한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자신의 명운을 건 주주와 종업원,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 기업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원료와 원자재, 부품을 제공하는 공급자, 기업의 막대한 영향력 하에 놓인 지역주민과 환경,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가 바꾸어 놓은 세상에서 살게 될 미래 세대…. 이들에 대한 책임의식과 이들과 함께 성장하려는 프로그램이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것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결정이고, 기업이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새로운 번영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기업의사회적책임(CSR)은 선언적이었다. 이제는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 저울질할 필요는 없다. 지금이다. CSR를 위한 환경은 이미 조성되고 있다. 조달과 인증, 투자의 영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청하는 법적, 사회적 조치들이 줄줄이 등장할 것이고, 소비자들은 자신들을 감동시키는 상품과 기업을 찾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것이다. 유권자는 기업과 사회 중 사회의 편을 들어주는 정치인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고, 자신의 직장에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직원은 자신의 생을 바칠 가치가 있는 직장을 찾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에 기업은 답해야 한다.
사랑과 존경을 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을까? 삼성과 엘리엇의 대결을 지켜보는 국민은 아직 삼성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애정보다는 애증에 가까웠다. 2라운드, 3라운드가 우리 기업들의 곳곳에서 펼쳐질 것이다. CSR,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