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자의 행동을 찬찬히 살펴보자. 한 기관투자자는 일 년 내내 저가에 팔기만 하던 주식을 합병이 발표되고 높은 가격에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합병안이 주총에서 통과되자 시장에서 다시 팔기 바쁘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도 ‘기관이 개미만도 못하다’는 이야기가 자주 거론된다. 주식투자의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비판은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상장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다. 개미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공매도라는 무기까지 쥐고 있는 기관이 주가지수 상승폭보다 못한 펀드들을 다수 갖고 있는 것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저점 매도, 고점 매수의 전형이다. 이런 사례는 수두룩하다. 확인되지 않은 호재나 악재가 나올 경우 주가 폭등과 폭락은 개인투자자들이 주로 투자하는 종목 못지않게 기관투자자가 주로 투자하는 일명 ‘기관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기관투자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는 투자유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기업은 기관투자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중장기적인 관점의 투자를 원하지만, IR 등을 통해 투자에 나선다 해도 호재성 공시나 뉴스가 나와 주가가 오르면 바로 팔고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중장기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를 만나고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데 ‘곶감만 빼먹고 먹튀’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업계와의 소통을 부쩍 늘렸다. 퇴직연금시장 활성화, 공시제도 개편, 파생상품 시장 활성화 등 증권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방편으로 시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관투자자를 살리는 것이 시장을 살리는 일이라며 기관투자자를 위한 정책을 다수 쏟아내고 있다. 기관투자자가 자본시장에서 제 역할을 하고, 이들의 비중을 높이는 일이 선진 주식시장의 형태이고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방안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재 주식시장이 궁극적으로 일반투자자에게 더 나은 이득을 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이 자본시장을 선진화하겠다며 업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업계의 이득이 결과적으로 일반투자자에게 흘러들어간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준비돼 있지 않은 기관투자자들 위주의 정책은 오히려 시장을 왜곡하고 망치는 길로 갈 수 있다.
결국 업계의 체력과 경쟁력 문제로 귀결된다. 저금리 시대에 내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기관투자자가 과연 국내에는 몇이나 있을까. 삼성-엘리엇 사태가 휩쓸고 간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기관투자자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 펀드가 해외에서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3000포인트를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